나는 지난해 7월 7일부터 금주를 시작해서 오늘까지 300일 넘게 금주를 하고 있다. 1986년부터 33년간 즐겨 마신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비공식으로는 48년 전 막걸리 3잔을 마시고 최초 술주정 이후 어른들이 술을 조금씩 마시곤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 날 집에 실려온 이후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금주를 하고 난 이후에는 개인 취미 시간이 늘어났고, 술 모임 대신 다른 모임을 좀 더 많이 찾아다니고 있으며, 가족들과 이야기 시간이 늘어났다. 이것이 금주 이후의 생활이다.
술을 끊고 나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몇 가지 말을 들었다. 첫 번째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잘했어 줄여야지" 그렇게 2~3개월이 지나자 다시 묻기 시작했다. "혹시 몸이 아파? 술 먹고 사고 쳤어?" 등등의 이야기였다. 같이 술을 즐기던 사람 중에는 "너무 안 마시면 안 좋으니 한두 잔만 해" "오래가네 그런데 우리랑 한평생 안 마실 거야?" 이런 회유와 아쉬움이 섞인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1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은 "대단하네 어떻게 술을 끊을 수 있지? 지금까지 한잔도 안 마셨어? 근데 정말 왜 완전히 끊은 거야? "라는 소리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종종 어떻게 술을 끊을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러워진다. 어떻게 한마디로, 간단히 답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나는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대답해왔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 P233>
나는 전부터 술을 줄이고 싶었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서른 중반부터 시작한 달리기는 정신과 신체 모두에 무척 좋은 운동이었지만, 술을 마시게 되면 근육이 풀어지고, 통증과 체중은 증가하여 운동을 제대로 못해서 의욕도 저하되었다. 그리고 늦은 밤 배가 불러서 숙면이 안되었다. 결국 낮에 일을 하면서 피곤하여 집중도가 점차 떨어졌다. 그리고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집에서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존재가 돈 버는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아이들도 나도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 아버지 몇몇 숙부님들도 술을 많이 드셨다. 나이가 드셔서 이런 저런 병을 얻어 돌아가시긴 했지만, 결국 기본적인 원인은 매일 술을 많이 마신 생활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의 정체가 표면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도 서서히 술을 마시는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고, 혼자 먹는 시간이 조금씩 증가했고, 매일 밤 물 마시는 습관처럼 익숙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 쉽게 자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를 통해 조금씩 인지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어쩌다 갈등이 있을 때 아빠는 술 먹고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잔소리만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내가 어릴 때 아버지의 닮기 싫은 모습을 조금씩 따라가고 있던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아이들이 심리적 방어기제로 나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정도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무척 신경 쓰이는 지적이었다. 나는 서서히 술을 빨리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외로움, 허무함 등을 잊기 위해 그리고 빠른 숙면을 위해 취기가 올라올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작년 봄부터 시작한 주 40시간 근무 이후 책을 좀 더 많이 읽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이 책의 표지를 보다가 '내가 사랑한 술, 놓쳐 버린 삶'이라는 글귀가 마음속에 있던 내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술을 마시는 한 나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절대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고, 그럴 기회조차 없었으며,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삶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게 술을 끊고 내 삶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향하도록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로, 진지하게 술을 끊는 일 말이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 P240>
술을 마시면서 나는 제대로 절제된 삶을 살지 못했고, 내가 평소 들이는 노력과 상관없이 매번 생활을 흩트려 놓았던 원인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떠올랐다. 난 술을 마시면서 규칙적인 내 삶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간 술을 줄이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여전히 좋아했고, 술에 대한 애증이 계속 있었다. 책을 구입해서 금방 단숨에 읽었는데, 공감했던 내용이 많았다. 책을 다 읽기전에 금주를 결심했다. 술을 끊어보자, 최소한 일 년만이라도 끊어보자, 아니 30년간 술을 즐겼으니 이제 30년간 술을 안 먹고살아보자. 술을 안 먹는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알코올 남용이나 의존증 그리고 중독증은 서로 섞여 있다. 또한 그 의미를 확실히 구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 P56>
(알코올 의존증 관련) 의존적인 성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심각한 음주의 심리적 원인과 결과에 대한 장기간의 연구 덕분이었다. <P58>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그랜트 연구에 따르면 (1937년부터 268명의 부유한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72년에 걸친 실험) 대부분 성인이 될수록 급격한 음주량 증가를 보였다. 그것은 노년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신호이기도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남성의 44%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정상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 중 45세 이후 절제를 잃은 사람은 58% 되었다. (중략) 이 실험에서 미래의 알코올 중독자와 정상적인 음주자를 구분하는 차이점은 단 두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미래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알코올에 대해 훨씬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래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어른들의 술 취한 모습이 익숙한 사회적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P60>
이 책에서는 남용, 의존, 중독이 구분이 어렵다고 했는데, 나는 그점을 주변분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의존적인 성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점차 의존/중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랜트 연구처럼 나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 술에 대해 아주 관용적인 입장이며, 외로운 중년이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결단을 내렸고, 이 책의 저자가 실행한 것처럼 AA 모임을 검색해서 참석했다. AA 같은 자조모임은 처음이었지만, 외국영화에서 심리학 치료장면 등에 몇 번 봐서 그런지 완전히 생소하지는 않았다. (AA 모임 홈페이지 : http://aakorea.org/)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알코올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약 200만 명이 활동하는 국제적 상호 협조활동 모임이다. 영문 앞 글자를 따서 A.A. 라고도 부른다.
A.A. 모임의 근본적인 목적은 알코올의존증,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A.A. 멤버들은 서로 간의 경험과 희망을 함께 나누고 있다. (P242)
이 모임은 나름 특이한 재미가 있다. 모임 구성층은 연령대나 지역이나 생활환경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모임도 제각각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모임이 있어 지역과 시간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모임을 선택하여 참석할 수 있다. 익명으로 개인정보를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 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참석을 하다 보면 구체적인 개인 정보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환경과 생각 및 감정의 흐름은 같이 공유한다는 것이 나름 좋았다.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안 해도 아무런 상관없다. 그런데 대다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람 심리인 것 같다.
이 모임의 목적은 단순하다. 술을 안먹기 위해 모임에 참석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이름 모를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면서 공감과 위안을 받으면서 금주를 다짐하는 것이다. '첫 잔만 마시지 말자'라는 것이 모임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다. 말장난 같지만 바꿔 말하면 결국 첫 번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진다는 이야기이다.
Just for today. 그저 오늘 하루만 마시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P108)
알코올 의존증이란 뇌가 학습에 실패한 치명적인 결과를 직면하게 되는 현상이다. 습관적 음주는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 자전거 타는 법과 유사하다. 술 습관 역시 강력한 신경 연결망으로 두뇌에 형성된다. (P142)
이 모임을 참석하면서 술과 사투를 벌이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 좀 숙연해진다. 술에 관해 조절을 못해서 삶을 망친 사례들을 듣고 있으면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드는데, 반면에 나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지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너무나 다른 모습들에 다시 나는 놀라고 있다. 친구들과 직장에서 내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생소함을 이젠 느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음주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성폭행 등의 죄에 대해 감형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점에서 볼 때 의존증이란 이 시스템에서 용인할 수 있는 요소다. 사회적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서도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길게 마시고 일할 수 있다.(P211)
음주에 대한 관대함 자체가 문제는 아닐수 있다. 그러나 술로 인한 피해는 정말 심각하고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통계적 사례 외에 개인적 경험으로도 알코올 중독은 피해가 크고, 중증으로 갈 때까지 조치를 못 하며 회복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단계까지 가기 전에 스스로 단주를 결심하게 된 것이 엄청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일 큰 영향은 역시 근무시간 단축이다. 투표권을 잘 행사해서 내게 유리한 정치인을 뽑아야 내 삶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금주 이후 어떤것이 바뀌고 어떤 것은 그대로일까?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을 때의 상황은 가끔 재현된다. 그걸 극복하는 심리적인 통제감이 조금 더 강해 진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면 무너질 수 있다. 한번 생긴 습관은 바꿀 수가 없다. 다른 습관으로 덮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은 운동, 독서, 아이와의 대화 등으로 채우고, 끊임없이 금주의 필요성과 효과 그리고 음주에 대한 경각심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향후 30년간 내가 변화해 나갈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술을 끊음으로써 예전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죄의식과 부끄러움 없이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 온몸의 세포를 통해 자유로운 추락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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