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승 교수님의 815 강연을 듣고 나서
올해의 광복절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리스트에 있는 부품을 조사하고 있었고, 각종 언론과 SNS에서는 NO JAPAN에 따른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취소가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불매운동과 여행취소의 적극적인 참여 현황은 내게 촛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무언가 뭉클했지만, 화이트리스트 제외 관련 일본의 국민투표가 절대적 찬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어두웠다. 대내적인 이슈는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합치면 변화가 되지만, 이전 중국과 사드논쟁때도 많이 불편했고, 미국의 방위비 분담 발언 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도 우리가 마땅한 강력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었다.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서로에 대한 관점이 적대적인것이 맞는 것인가. 각각의 국내외적 입장이 있겠지만, 혹시 정치적인 이슈에 너무 치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공산당이 싫어요'를 너무 많이 경험하고 나서, 나중에는 따분해지는 그런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우리의 입장이 도덕적 우위와 합리적인 사고인지 확신이 어려웠다.
자주 페북을 이용하는 내게 친구추천이 반복되는 인물이 있었다. 일본 관서대 장부승 교수였다. 나이에 비해서도 젊어 보이고 잘생긴 얼굴이라 선뜻 친구 요청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나와는 생활, 사고 영역이 틀릴 것이라 생각했다. 습관처럼 타임라인을 몇 번 읽다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65년 체제를 끝내자는 일본'(http://bit.ly/31Jz0Jf) 기사를 보고서는 친구신청을 했고, 나중에는 8월 15일 국회의원회관 특강까지 찾아가서 듣게 되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신성장학파' 라는 독서모임이 장부승 교수를 초청하여 특강을 했다. (강연 후에는 '신성장학파'라는 독서모임이라는 모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중에는 결국 연회비를 냈다.) 강의 제목은 '한일관계 어떻게 할 것인가' 였다.

장부승 박사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외무고시 수석합격(인터뷰 기사), 간서대 최연소 정교수이기도 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시원시원한 발언과 자세가 매력 뿜뿜이었다. 약 15년간의 외교관 실무 및 관련 분야 박사과정,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는 교수생활은 그 자체로 한일분쟁이슈의 충분한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았다.

먼저 한일관계는 동북아의 국제정세를 먼저 큰틀에서 살펴보고 양자간 관계에 대한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이것을 이해하고 마음에서 받아들이자, 한일관계의 뜨거운 이슈는 가슴에서 머리로 활동영역이 옮겨가게 되었다.
우리는 왕정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변모를 한 것이 정치적인 커다란 발전이라는 대전제로 시작했다. 서구의 근대사의 업적은 공화정을 이룩한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충실하게 이룩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업적은 1) 공화정의 기초, 2) 공화정의 물적기반, 3) 공화정의 제도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3.1절 운동의 주역들은 유림세력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이때에는 조선왕조 복구가 목적이 아니고 공화국 건국의 이념이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여기서 공화정의 기초를 이루게 된 개인들의 각성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동학 이후 민본주의를 점차 각성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일제 식민지의 신식 교육의 영향과 각 개인들의 각성으로 급속도로 서구의 국가 개념에 눈뜨게 되었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난 둘 다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여기 이 페이지에서 번쩍 눈을 뜨게 만든것은 종북/친일파 몰이 메카시즘이었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도 일종의 메카시즘이 될수 있구나'였다. 선대의 전쟁 및 전후 세대들이 레드 콤플렉스에 벗어나기 어려웠다면, 자주, 통일, 단결을 부르짖은 x86 세대들은 일제통치, 미군 통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증오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리는 경제력, 군사력 등 전체 국력은 세계 7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세련되고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국제적인 위치에서도 선진국의 역할이나 입장이 되어 스스로의 자주적인 국가의 면모를 보일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와 같은 민족이며 역사공동체인 북한이 문제다. 너무나도 다른 정치사회체계인 북한과는 생존적 대립관계를 유지하며,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과 영향력은 우리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러시아는 그나마 약한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전략목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것이 맞는가이다. 장교수님은 1) 한미일 체제의 공고화, 2) 중국과의 새로운 전략적 관계 정립, 3) 독자적 국제관계 정립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교수님은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세 번째 독자적 외교 강국 (Proactive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원칙을 천명하고 그 원칙을 향해 꾸준한 모습을 보이되 외교에 있어서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그런 나라가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한미일 체제 강화는 지속적으로 부상하고 있고, 경제협력의 정도가 가장 커지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악화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북한과의 통일 추진도 한미일 협력체제에서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정립도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체제가 전혀 틀린 가운데 인권이나 반체제 인사 등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틀리고, 분쟁의 요소로 발생이 너무 쉬우며,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이 있어서 우리와의 관계는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수동적인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조금씩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대국과의 이해상충은 어쩔수 없겠지만 갈등에 대해서는 유연적으로 대처하며 꾸준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제일 어렵고 보험도 없는 배수진 전법 같지만 이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 관련하여 북한과의 적극적 협력으로 좀 더 큰 규모의 경제/정치 규모를 갖추고 독자적인 목소리와 발전을 하겠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북한은 815 경축사 관련 남한 주도적인 입장표명에 대해 위협과 침해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Proactive 하지 못한 외교사례를 설명해주었다. 북한의 인권침해, 사우디 언론인 피살 후 경제협력,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중동분쟁 시 등 떠밀린 파병, 사드 사태 때의 대응, 트럼프의 방위비 6조 분담 발언에 대한 대응 등 수없이 많은 자주적이지 못한 우리의 태도를 비판했다. (얼굴이 좀 뜨거웠다.)
대법원 판결은 국내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일지라도, 대외적인 국가의 대표는 국가원수이고 상응조치도 마찬가지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뒤로 숨는듯한 모습은 자주적인 모습이 아니다. 아니면 판결에 대해 동의했으면 적극적으로 재협상 의지를 밝혀야 한다. 불매운동과 여행 취소는 민간의 영역이지 국가의 공식적인 조치가 필요했었다. (나는 이 현상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싸우는 시늉만 한다고 생각했다. 대응조치가 너무 형식적이고, 소극적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방향으로 1) 목표의 다양성과 복잡성, 2) 가치의 일관성 3) 대응의 유연성을 제시하였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보여지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북한과의 협력이 최우선 과제라면 주위의 국가들에게 지지를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갈등에 대해서도 우리의 최종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본에게 원하는 것과 그에 대한 우리의 수단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었다.
실제 우리가 UN 등의 국제기구에 호소를 해도 적극 지지를 받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였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은 대다수가 과거 식민지 침탈을 한 국가이며, 오히려 일본을 제외한 어떤 국가도 국가간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고 한다. UN의 여러 식민지 피해 국가들과 연대를 한다면 모를까 대단히 어려운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현재의 국제법은(국가간 적용이 제각각인 형사법보다는) 민법을 원형으로 만들어진 법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식민지 침탈에 대한 민법적 고려는 될지언정 형사적 처벌은 국가 간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당사자간 협정이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리의 싸움은 불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교수님은 학자의 입장인 비판과 예측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직 외교관답게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명확하게 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활동들이 어려울지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면 꾸준히, 명확하게 그리고 공식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강연 내용도 세세하면서도 시원시원했지만 그보다 더 상세하고 솔직한 문답시간이 더욱 좋았다. 모여든 60~70명의 인원들이 거의 소감과 질문을 하였고 이에 대해 종합적 답변도 해주셨다. 기억나는 대로 옮겨본다.
일본의 왜 이런 입장인가? 일본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본은 지속적 존립을 위해 미중간 유연성에 따른 양다리 외교가 필요하다. (중국 국방비 2,500억불[증가율 : 7~8%/년], 일본 국방비 460억불[증가율 : 0.8%/년], 한국 국방비 430억불[증가율 : 4.4%/년]) ==> 일본의 국방력이 무서운가 아니면 중국의 국방력이 무서운가? 일본은 의외로 돈이 없다. 중국의 경제/군사력이 커지고 있어 중국의 위협 대응과 경제적 협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 협조 플레이를 하지만 국익에 위배되는 협조는 거부하고 있다. 호르무츠 해역에 병력 투입을 안 한다. 평화헌법의 조항 등을 핑계로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김대중-오구치 선언으로 1개국에 대해 사과한 사례가 국제적으로는 처음이다. 한미일 동맹을 한국이 먼저 깨뜨렸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례), 자민당의 재집권으로 한국 불신 강화되었다. 아베와 박근혜의 합의도 일본 내부에서는 반대의견이 많았는데 나름 노력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한국은 못 믿겠다는 입장이 강해졌다. 한미일 동맹에서 제외하자는 것이 일본 주류로 판단됨. 현재 인도-태평양(일본/호주) 전략은 우리가 제외되어 우리의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 북한의 입장은 더욱 치열하다. 북한에게는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크게 생존의 위협이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북한은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정치력에 절대적인 존립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가 바로 주적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러브콜을 쉽게 받아줄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배상을 받을 가능성은 어떠한가? 객관적으로 예측해 본다면?
대법원 판결도 오류가 많은 경우가 있다. '관습헌법'이라는 용어처럼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온다고 생각함. 배상권 관련하여 외국의 판례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본의 배상 판례를 불인정), 국내법보다는 국제법을 우선시 하는데 우리는 국내법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국제법을 따르면 배상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법에서 전쟁은 합법/불법이 없다. 국제법은 민법을 준용해서 만들었다. 배상과 보상의 구분이 없다. 그 당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합법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식미지 배상은 없다. 일부의 비공식 보상 정도일 뿐이다. (영국-인도, 영국-케냐, 독일-나미비아, 네덜란드-인니, 벨기에-콩고, 미국-필리핀, 등등 많은 사례에서 공식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이 강연으로 나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가?
나도 강연 내내 생각했고, 문답시간에 참석자들의 주요 질문 중 하나였던 전략목표에 대해 대외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였다. 우리의 기본목표를 명확하게 한다면 미국이나 중국뿐 아니라 북한과 일본의 대응전략이 나올 것인데, 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맞느냐 였다. 전에 중국처럼 '도광양회'처럼 조용히 국력을 키우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좋지 않으냐 였다.
내 나름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을 했다. 자칫 자존심 한번 세우다가 국가의 존립과 안보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수도 있기에 섣부른 독자노선의 천명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손실이 아니고 존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미중 어디에도 우리는 손을 끊을 수도 없다. 그것은 어느 쪽에도 강하게 붙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위태롭지만 자주적인 독자노선으로 홀로서기와 균형잡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압력에 대해 아직도 미국의 경제적 우산이 작용할 수 있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반면 우리가 중국과 손을 잡으면 중국의 압력이 줄어들까? 이역시 아니라고 본다.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역사적으로 긴장관계다.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쉬운 편이라고 본다) 장교수님도 이 같은 배경으로 자주노선 결론을 낸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 강연을 만들어주신 신성장학파 독서모임의 최병천 보좌관님과 윤범기 기자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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