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온라인 모임인 '카페 성장판'에서 책을 소개받았다. 책을 소개해준 선아님은 갖가지 처한 상황에 맞춰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책이라고 이야기해주신다. 구미가 당겨서 냉큼 주문을 했다.
읽은 책은 별로 없고, 주문한 책만 늘어난다. 전자책이라면 크게 상관없는데 조금씩 책을 놓을 자리가 없다. 평상시 책을 정리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냥 쌓아놓고 언제 읽을까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고 있다.
뭐 그래도 이리저리 지내다 보면 읽어야 할 책은 결국 읽게 되기에 끌리는 책부터 읽기로 한다. 모두 5부로 되어있고, 56편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부피가 작은 책에서 제법 많은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읽어본 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 쑥스럽다.
책의 첫머리를 읽어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이 책은 금방 읽겠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글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난 또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구나.
열여섯 살 소녀는 UN에서 세계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호소하며 울분을 토했다는데, 어째서 나의 울분은 이토록 사사롭고 소소하며 일상적인가. 해결하고 싶은 인생 과제 중 하나가 내 울분의 지독한 개인성이라는 게 진심으로 분하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사십오 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안 나올 때, 점심시간 끈나 간다 항의했더니 "지금이라도 주문 취소해 드려?"라는 말을 들을 때. - P013
그리고 1부의 첫 장이 '가슴속에 울분이 차오를 때는' 이라는 주제이다. 이럴 때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든다. 바로 읽었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세네카에 기초해 분석해보면, 울분은 발생 원인에 따라 둘로 나뉜다. 인과관계에 의한 울분과 운명에 따른 울분. (중략)
전자일 땐 억울하고, 후자면 기구하다. (중략)
"분노는 처벌을 실행하려는 욕망이지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실행할 수 없는 것도 욕망한다." - P020
이 책을 읽을 때의 심정은 무언가 화나고 억울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코인 가격이 떨어지고, 회사의 일이 제대로 안 풀려서일까? 개인 생활은 별 탈 없은데 다만 좋아지는 느낌은 별로 없어서일까? 그래도 참고 기다리라고 한다. 세월이 약이라고...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시간을 이기는 울분은 드물다는 것, 적절함을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것, 극과 극을 오가는 게 더 쉽다는 것이다.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은 채 이 또한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내키는 대로 막살면서 일희일비하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인데, 극과 극을 자주 오가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운 짓도 없다. - P025
작가는 '세 가지 용기에 관하여' 코너에서 코맥 매카시를 소개했는데, 책을 읽고 싶고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 진다.
겁쟁이가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을 버리게 되면 남들을 배신하는 것도 쉬워지지. - <모두 다 예쁜 말들> - P051
미국 남부에서 어려운 생활을 해왔던 매카시의 삶과 소설은 왠지 이전에 영화로 2번이나 보았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척박하고 메마른, 휴머니티는 없고 약한 자는 도태되는 그런 비정한 느낌을 받았다. 꼭 읽어보고 싶다.
( 글 쓰는 도중 책을 검색해보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코맥 매카시가 썼다. 역시 뻘쭘해진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은 품절이라 정가보다 비싼 중고를 구입했다. -_- )
그러나 제아무리 무자비한 야생에도 탄식을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있다. 암흑의 지구 위로 쏟아지는 유성우처럼 황홀한 문장들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 생각하게 된다. 용기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말들을 예뻐하는 마음. 언젠가는 식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온기를 지켜 주려고 애쓰는 마음. - P054
<설국> 편에서 나오는 자존감과 도덕성에 대한 글은 좀 많이 놀랐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공감력, 감수성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도덕성까지 낮아진다는 것, 도덕력의 원천이 공감력이라니, 좀 충격이다. 하긴 도덕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고, 사람 간의 공감대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회심리학자 돌리 추그에 따르면, '자존감'과 '도덕성'은 반비례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실제 상황에서는 낮은 수준의 도덕 판단력을 보여 준다는 것. 뭐지, 이 싸한 기분은? - P065
도덕력의 원천이 공감력이라면,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는 능력이 강할수록 도덕성은 약해지겠다. 남의 말에 솔깃하지 않으니 비난에도 흔들림이 없고, 공감을 못하니 막말에도 아무렇지 않은 거다. 그래서 자존감 강한 사람 곁에 있다 보면 그나마 있던 희미한 내 자존감마저 고갈되고 마나 보다. - P067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챕터의 <고도를 기다리며> 책을 소개할 때 요즘 내 고민이 나온 것 같다. 내가 지금 시간을 보내는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맞는 것인지 의심은 들지만, 별다른 확신도 없어서 그저 지속하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극 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과의 싸움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고도가 '아직 나에게 당도하지 않은 기쁜 미래'일 거라는 믿음은 약해져 간다. 그럼에도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기다림을 포기하는 순간 지나온 시간의 헛됨과 돌이킬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을 회의하게 만드는 허상들의 총합이 고도이고, 그게 허상이라서 고도는 오지 못하는 것이다. - P090
다른 부분의 마음속에 들어온 글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 편이었다. 매번 '진화'의 정의 대해 바로 잡지만, 좀처럼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인용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위대한 이유는 "지구 상의 전체 생물종[풀하우스]의 진화가 인간이라는 정점을 향해 부단히 진보해 왔다고 믿는 플라톤적 사고가 오류임을 입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진화는 '더 진보한' 생물의 출현이 아니라 다만 '더 다양한' 생물군으로의 확산일 뿐이다. - P161
작가는 이 책의 추천글을 쓴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를 마지막에 소개하면서 추천을 한다. (이 책도 장바구니에 넣어야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중요한 건 어제야.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P252
(여기 인용을 하면서 코맥 매카시를 기록했는데.... 참내 나는 책을 뭘로 읽은 건지.... '뭐 그래도 검색하고 옮겨 적으면서 기억하면 그나마 다행인 거지'라고 위안해본다.)
책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부피와 무게와 두께를 가진 물질로 바꿔 놓은 것이다. 책에는 남들의 목소리와 남들의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중략)
그래서인지 책을 많이 읽으면 아무와 만나지 않아도 온 세상을 겪은 것처럼 힘들고 웃기고 무섭고 신나고 짜릿하다가 슬퍼 죽을 것 같다. 독서의 실용적 효능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은 내 마음이 세상의 수많은 마음들과 만나는 너른 광장에 있음을 발견한다. - P258
작가의 맺음말에 나온 책을 읽을 때는 외롭지 않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감한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고, 우리는 비대면의 즐거움과 소통의 필요를 느낀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서 떠들고 웃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책을 통해서 사람들도 만나고 싶다. 깊은 이야기는 대면보다는 글이 더욱 다가올 때가 있다. 행간의 의미와 상황의 묘사로 심리를 추측해보고 공감하는 것도 좋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책은 혼자서 즐기는 취미이지만, 함께 할 때 더욱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이수은 작가님도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나 혼자 생각해본다. 참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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