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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내가 느낀 5.18 운동의 단상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는 5.18 당시 중학생 1학년이었다. 기억하기로는 80년 초에 대학생 형들의 데모가 심했다. 대학가 근처에 살았기에 가두투쟁을 몇 번 보았고, 이내 잊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86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첫 번째 5.18의 기억은 86년 사진전이다. 학생회관에 전시된 광주 항쟁 피해자들의 모습은 무섭고 불쾌했다.  적나라한 폭력의 잔상이 남아있는 주검들의 사진들이었다. 대자보를 보면서 의심이 들었다. 북한의 배후세력이 이런 것을 조작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실들이 있었다고?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봐서는 그럴 것도 같다. 

두 번째 기억은 옆집 형이다. 87년에 광주에서 올라와 우리 옆집에 세 들어 살던 3남매 중 큰형은 80년에 20살이었다. 그때는 이미 어렴풋이 광주의 참상을 들었기에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형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나와 바둑을 두고, 당구를 치며, 무협지를 같이 읽던 형이었는데, 광주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도 들었지만 나보다 7살이 많은 형님에게 재촉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젠 약간은 이해가 갈 것도 같다.

세 번째 기억은 회사 후배와 남도 여행을 할 때다. 93년 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서 회사 후배와 전남지역을 2박 3일로 여행을 갔었다. 94년 ~ 96년 이른 봄으로 생각된다. 책에서 나온 광주 망월동 묘지를 우리도 갔었다. 그런데 묘지가 그렇게 허름한 것을 보고 놀랐다. 마치 버려진 것 같았다. 세월이 많이 변했고 문민정부가 되었지만, 빨갱이의 낙인은 그렇게 우리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느낌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가족의 심정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옆에서 고개를 외면하고 있다가 한평생 죄지은 사람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느낌은 알 것 같았다. 

87년 우리 옆집에 살던 광주의 형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형이 광주항쟁에 동참을 했더라도, 80년대에는 아무런 말을 할수가 없었다. 반대로 숨죽이고 숨어있었어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죄 없이 죽어갔고, 죄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일들은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소설 속에서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하다가 죽어간 동호가 느껴진다. 80년 초에 이화여대에 담하나 사이를 둔 나의 중고등학교에서 보았던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대학 건물에서 꼭대기 층 창문에서 유인물이 뿌려지면서 구호가 외쳐지면, 2~3분도 되지 않아 여학생이 붙잡혀 갔다. 이화여대는 공식적으로 남자 출입이 금지된 곳인데, 곳곳에 경찰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5분 동안의 구호를 외치기 위해 여학생들은 인생을 걸었다.

P086
사복경찰이 교내에 상주했고, 그들에게 연행된 학생들은 최전방으로 강제 입대됐다. 위허이 컸기 때문에 집회는 자주 열릴수 없었다. 대신에 인생을 건 싸움이었다. 중앙도서관 유리창이 안쪽으로 깨지고 긴 현수막이 외벽을 따라 늘어뜨려지면 그것이 신호였다. 살인마 전두환을 타도하라. 옥상 기둥에 밧줄을 묶고 자신의 몸에도 감은 뒤 뛰어내리는 학생도 있었다 사복경찰이 올라와 밧줄을 끌어당기는 시간을 벌려는 거였다.

70년대에는 공식적으로 탄압이 정당화 되었고, 이적단체로 규정 사형을 당했고, 80년대 초에는 조용히 끌려가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나왔고, 87년에도 여전히 고문과 최루탄으로 사람이 죽었으나, 전과 다르게 정권 퇴진운동이 전국으로 퍼졌다. 그래도 87년 대선을 진행하면서 기습으로 인한 테러는 빈발했다. 대선 전날 내가 지내던 방을 불쑥 찾아온 2명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라고 하면서, 내일 선거 참관인인데 밤중에 경찰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숨어 찾아온 것이다. 

경찰이 찾아오면 민폐는 물론이고 잘못하면 병신이 될 정도로 맞을 수도 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겁이 나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냐면서 내일 투표소가 기습받을 수 있는데 그래도 가야 할 것 같다고 담담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감정은 기억에 남는다.

3학년 마치고 휴학을 하면서 겨울방학동안 시간이 많아서 매일 바둑을 두고 놀던 학과 동기가 있었다. 몇 달 뒤 그 친구는 총학생회 부회장이 되었고, 나는 군인이 되었다. 그 친구는 이내 전대협 부의장이 되어 불법집회 주모자로 전국수배가 되었고, 나는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했다. 나는 학교를 마저 마치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신입사원 때 약간의 돈을 받고 모교에 가서 입사원서를 받아오라는 일이 떨어졌다. 

학교에 가서 후배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회사에서 받은 돈으로 술 한잔 하면서 조심스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실형 대신 강제로 입영이 되었고, 관심사병으로 등록되어 보안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불려 가서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받았다고 했다.

그 친구에 의하면 '심하게 때리지도 않고, 잠도 재우고 먹을 것은 주더라'고 했다. 지금은 다 잊고 싶고, 그저 중소기업이라도 취업 좀 하고 싶다고 했다. 홀 어머니를 이젠 일하지 않도록 부양하고 싶다고... 그 당시 우리 학교 우리 기계과는 성적과 상관없어 민간기업은 어디든 취직이 가능했었다.

학생운동 경험이 자랑이나 경력이 아니고, 숨겨야 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고, 그런 친구들을 외면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었다. 마음속의 말을 하면 안 되었고,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가슴알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이야기는 꼰대의 시대에 뒤떨어진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세월호는 이제 지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세월호에 대한 규명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5.18 특별법은 자유로운 토론이나 의견을 막는 악법이라고 이야기 하는 분들도 있다. 깊은 상처와 고통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후유증으로 계속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듬지 못하고,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있는 것이다.

P134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조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우리의 외면하고 있는 상처를 다시 들춘다. 이거 낫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치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것 같다. 아마 자신의 상처를 보이면서 당신들은 어때 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덮고 다시 상처 쪽은 쳐다보고 싶지 않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