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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어린이라는 세계' 이해하기

5월 성장판 분당 독서모임 주제 도서는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집안에 어린이가 없는데, 이 책은 다가서기 어려웠다. 모임의 주축은 30~40대 이므로 어린이가 집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집은 전부 성인이니 공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내 딸들이 자라는 과정 중에 얼마나 많은 나의 편견과 아집이 드러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결국 읽고 나서는 지난 20년 동안이 후회가 되지만, 뒤늦게라도 딸들에게 사과를 하고, 딸들도 나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P041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큰 딸이 기억하는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사건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동생과 사촌동생들과 놀았는데, 내게 엄청 혼난 것이다. 나는 제일 큰아이인 8살 큰 딸에게 동생들이 저렇게 말썽을 부리는데 왜 언니가 통솔을 하지 못하냐는 본보기로 큰 딸을 혼냈는데, 큰아이는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날 만큼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이었다.

그날의 내 판단과 행동은 정말 잘못된 것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어리석음과 용렬함이 되살아난다. 몇 번 사과를 했지만, 다시 한번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큰 딸의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내 마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P053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악몽은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어린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우리가 알고 있다. 이런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둘째 딸은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었다. 사춘기를 지난 나이지만 정말 힘들어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감싸 안기보다는 엄격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둘째 딸은 나름 정말 많은 노력과 용기를 발휘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기숙학원에서 좀 더 힘든 생활을 버티고 있다. 스스로가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믿게 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게 된다.

P191
존댓말을 하는 쪽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표현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응한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면서 존대말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기 어렵게 자랐다. 아무리 외화를 많이 보아도, 외국인들과 영어로 일을 해도, 어느 순간엔가 장유유서의 분위기는 나의 온몸에 스며들어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엄청난 분노가 일어난다.

이런 나의 감정이 내 딸들에게도 배여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로 아득하다. 조금씩 딸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들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무배려의 억울함을 느끼는 것 같다. 직장에서부터 존댓말을 하는 습관,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습관을 강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노력하자.

P219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P219
언제난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 절망의 말을 내뱉기 전에 어린이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자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말이 공감이 간다. 아무리 힘들고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져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끝까지 힘을 내게 만든다. 적당한 차선이 아니고, 포기하지 않으며 올바른 최선의 방안을 찾게 된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 여성인 두 딸들을 생각하게 만든 구절이라 나름 감동이 되었다. 

P226
진실한 마음에서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든, 어른들은 어린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을 것이고, 시청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런 장면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극적인 연출보다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P227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어린이를 대상화 하는 지적에 따끔한 아픔이 느껴진다. 문제는 어린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것 같다. 남자가 여자를 대상화하고, 권력자는 민초를 대상화한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존재 이건만, 범주화해서 평가하고, 적당하게 값을 매긴다. 지금도 여전히 제버릇 개 못주지만, 각성할 때마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P228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의 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이가 찍은 영상을 보았다. 바깥에서 폭탄이 터질 때마다 아버지와 아이는 큰 소리로 웃었다. (중략) 아이는 정말 공습이 놀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무섭지만, 아버지를 믿고 기꺼이 오해하기로 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어린이는 아버지의 사랑만은 조금도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복잡한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어린이를 울리는 어른과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있다. 어느 쪽이 좋은 어른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게 하는 사람들은 학력이나 재산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훨씬 잘되는 경우가 많지만, 예외들도 엄청 많다.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성실하고 온전한 배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문제가 되는 주된 이유는 부모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자녀를 살펴본 개인적 견해는 '아이들이 엄청난 잠재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인정을 받고 올바른 기대를 받으면서 성장을 하면 저절로 활짝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내 손을 떠난 것 같은 성인의 자녀들에게 무언가 친구처럼 다가갈 방법은 없을지 뒤늦게 고민을 해본다.

그림도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