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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는 맞는 말일까

이 책의 겉장에 제법 흥미를 끄는 선전문구가 있다. "대선 후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실업률에 따라서 정권이 쉭쉭 바뀌고 있는 시대에서 '노동의 시대가 끝났다'는 주장을 듣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한번 진지하게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책에서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 가지 부자가 되는 법을 읽은 것 같다.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JW),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창업자가 되는 것(MS, 애플, FB 등), 그리고 마지막은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의 사용법을 압축, 조기 학습해서 전문가로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SW 엔지니어)

어느 것도 쉽지는 않지만 마지막이 그나마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회사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 예전의 경력과 인맥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시니어의 장점은 두 가지인데, 새로운 시스템으로 인해 조직과 업무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고, 기존에 사용하는 업무방식은 새로운 기술과 표준을 배우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전문가가 별로 필요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업무 표준과 프로세스/시스템 설계를 하는 소수만이 필요하게 된다. 나머지 인력은 그저 기계 대신 (아직은) 시스템의 프로세스의 입출력을 담당하고 있다고 나는 느끼고 있다.

아직도 반갑고 그리운 대학 동창들과 통화하다보면 꼭 묻는 말들이 있다. "지금 뭐해?" "카페 나와서 책 읽고 있지". "아니하는 일 말이야". 친구의 전반적인 상태를 알고 싶을 때 반드시 묻는 질문들이다. 물론 나도 그런 점이 궁금하다.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가족 근황보다는 물어보기 편하다. 

이 책을 통해 일에 관한 집착과 편향을 극복하고, 다른 방향의 삶을 좀 더 생각해야 한다는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목차를 살펴보니 작가는 기술과 일의 역사, 위협, 그리고 우리의 대응이라는 세 가지 단락으로 나누었다.

P059
컨설팅 회사 맥킨지 앤 컴퍼니가 2017년에 820개 직업을 살펴본 연구가 이런 핵심을 잡아냈다. 연구 결과, 현재 기술로 완전히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5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구성 업무 중 적어도 30퍼센트를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무려 60퍼센트가 넘었다. 달리 말해 기계가 완전히 도맡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적지만, 적잖은 부분을 맡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많았다.

P061
전문직으로 손꼽히는 직업을 구성 업무에 따라 나눠 보면, 업무 대다수가 '틀에 박힌', 그래서 벌써 자동화될 수 있는 업무다. 많은 교육을 받은 전문직들이 손보다 머리를 써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훨씬 중요한 사실은 그 업무가 얼마나 '틀에 박혔느냐' 여부다.

책에서는 결국 거의 모든 일의 자동화는 진행되고, 순서와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동화된 방직기계 대신 뜨개질로 옷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자동화에 따른 인간의 노동력 대체현상은 변함없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P077
2017년에 캐나다와 체코의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딥스택이 4만 4,000회가 넘는 1:1 게임에서 포커 고수들을 물리쳤다. 알파고 제로와 마찬가지로, 딥스택도 인간 고수가 이전에 펼친 경기들을 참고로 전술을 세우지 않았다.

P092
"몇 가지 능력을 지닌 생명이 두서너 가지 또는 한 가지 형상에 불어넣어졌고, 또 그렇게 단순하기 짝이 없게 시작한 생명이 행성의 분변이 원칙인 중력에 따라 돌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무수한 형상으로 진화했고, 또 진화하고 있다는 견해는 장엄함을 풍긴다" - <종의 기원>

P102
'인공지능 착오'란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업무를 수행할 줄 아는 기계를 개발할 유일한 길은 인간이 그 업무를 수행하는 법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다.' 이런 착오가 오늘날까지도 널리 펴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기술과 일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P107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지 않고도 매우 유능해진다면, 오늘날 인간이 가진 능력이 앞으로 기계가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이 부분은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능을 갖게 되며, 우리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기계에 대해 우리의 편견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고 하니 무언가 답답하고 겁도 난다.

P121
기계는 이제 사람들이 틀림없이 바흐가 작곡했다고 생각할 만큼 정교하고 그지없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를 감독하고, 예고편을 편집하고, 정치 연설의 초안까지 작성할 줄 아는 시스템들이 있다. (제이미 서스킨드의 말대로 "툭하면 로봇처럼 영혼 없이 말하는 정치인들도 지긋지긋한데, 이제는 정치인처럼 말하는 영혼 없는 로봇까지 생겼다")

P125
로봇 공학자들은 로봇의 모습이 인간과 거의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같지는 않을 때 우리가 이런 로봇에 불쑥 불쾌함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를 자주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이 계곡을 필요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는 사람을 빼닮도록 로봇을 설계할 때만 문제가 된다. 하지만 대다수 업무에서는, 심지어 정서와 관련한 업무에서조차 로봇을 그렇게 설계할 까닭이 없다.

P138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기계의 성능이 갈수록 향상해, 한때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업무 영역을 어느 때보다 깊이 그리고 서서히 파고들 전망이다. 오랜 격언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그리고 끈질긴 업무 잠식뿐이다.

P179
레온티예프의 말대로, "말의 먹이를 줄이면 말이 트랙터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듯이,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면 기계에 대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대체 과정을 잠시 늦출 뿐이다."

가장 인간적인 예술과 정치의 영역에서도 로봇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노동력을 부분적으로 대체해 나간다. 순서와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실하게 잠식해가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서 노동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 그리고 이는 되돌릴 수 없다.

P195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소득 점유율을 살펴보면, 1970년 뒤로 상위 1퍼센트의 점유율이 2배로 늘었고, 상위 0.1퍼센트의 점유율도 2.5배 가까이 늘었으며, 상위 0.01퍼센트의 점유율은 3.5배 넘게 늘었다.

P198
지난 30~4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파이 조각 즉, 경제학자들이 노동 분배율이라 부르는 몫은 줄어들었고, 전통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가져가는 파이 조각 즉, 자본 분배율은 늘어났다. (중략) 1995년부터 20년 동안 24개국에서 생산성은 평균 30퍼센트가 올랐지만 급여는 16퍼센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P204
케네디 대통령은 "밀물은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라는 유명한 말로, 경제 성장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이롭다는 뜻을 재치 있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부분이 있다. 물살이 거셀 때 어쩌다 보니 배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는 세 가지 주요 인자가 있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기술의 발달, 자본의 투입, 노동시간이다. 순서대로 효과가 좋다고 들었는데,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중요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며, 기술과 자본에 대한 분배 편향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P227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가운데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숙련 기술을 가르치거나 더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 소득과 거의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교육이 대부분 '신호 보내기'로 알려진 쓸모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학 교육이 임금을 올리는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학생의 능력을 더 키워서가 아니라 대학 교육이 어려워서다. 애초에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만이 교육 과정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P234
기술적 실업은 현실로 다가온 위협이다. 게다가 더 골치 아프게도, 오랜 대응 방식인 '더 많은 교육'의 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더 떨어질 듯하다. 이 결론에 다다르자, 내가 도전해야 할 대상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다른 대응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구성원의 교육을 통해 일자리와 급여를 지불해왔다. 하지만 교육이 효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고, 설사 교육이 효과가 있었더라도 이제는 이를 해결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P242
그런 정신에 비춰 큰 정부가 맡아야 할 주요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 앞으로 용케도 가치 있는 자산과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크게 매겨야 한다. 둘째, 그렇게 모은 돈을 자산과 소득이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P243
경제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경제 소득 최상층에 가장 적합한 세율은 현재 수준과는 거리가 꽤 먼 70퍼센트다.

P247
OECD 회원국들의 세수입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960대에는 1퍼센트가 넘었지만, 현재는 5분의 3이 줄어 채 0.5퍼센트가 안 된다. 심지어 상속세를 아예 없앤 나라도 더러 있다. 상속 자산이 불평등을 크게 심화하고, 특히 어떤 사람들이 왜 유난히 부유한 지를 중요하게 설명하는데도 말이다. 지난 15년 동안 북아메리카에서는 재산을 물려받은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의 수가 50퍼센트가 늘어났다. 유럽은 한술 더 떠 100퍼센트였다.

P248
대기업의 지배력이 커지면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이 기업들의 수익도 커진다. 일이 줄어든 세상이 다가오면, 이런 수익에도 반드시 제대로 세금을 매겨야 한다.

P250
대기업이 세금을 회피하는 방식은 법 정신에 어긋나기 일쑤지만, 법인세를 관장하는 법률 조문에 어긋나는 일은 드물다. 달리 말해 대중이 기업의 세금 회피에 분노하는 까닭은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익을 거두는 사업체가 법률의 허점과 세부조항을 악용해 적절한 세금을 내지 않고 빠져나가면, 사람들이 그 회사에 보낸 신뢰를 저버리는 짓으로 비친다.

이 부분에서 속이 좀 시원해졌다.  우리가 끝없는 사회적 우위 선점 경쟁을 하면서 이에 대해 반대를 하게 되면 낙오자 혹은 현실에서 떨어진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주장은 새롭고 신선하다. 누군가 내 대신 속시원히 큰소리를 질러준 것 같다. 

P252 - 보편적 기본 소득
보편적 기본 소득은 정치 성향의 끝과 끝에 있는 사람들이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 동의하는 보기 드문 정책 제안이다. 보수주의자는 보편적 기본 소득이 단순하므로 기족 복지 제도의 비효율적인 복잡함을 없앨 것 같아 좋아한다. 자유주의자는 이 정책이 상당한 소득을 지원하므로 가난을 완전히 없앨 것 같아 좋아한다.

P256 - 조건적 기본 소득
보편적 기본 소득이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두 가지를 떠올린다. 첫째, 누구나 원한다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수급자에게 어떤 자격 조건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조건적 기본 소득은 두 측면에서 모두 다르다. 일부 사람들만 받을 수 있고, 분명한 자격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P258 - 구성원 승인 정책
2007년 금융위기가 미친 파장을 떠올려 보라. 경제생활이 힘겨워지자 많은 나라에서 이민자들에게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 '공공 서비스를 무너뜨린다' 같은 거친 표현을 쏟아 냈다. 공동체의 경계선을 줄여 '우리'의 의미를 좁히려는 집단 충동이 일었다. (중략)
간단히 말해,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누가 아니냐는 물음을 회피할 길이 없다. 조건적 기본 소득을 실행한다면 보편적 기본 소득에서처럼 이 쟁점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P259 - 수급 자격 조건
첫째, 그런 지원금이 낭비가 아니다. 지원금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면, 부자가 지원금을 받더라도 다른 사람의 지원금을 떠받칠 세금을 지원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낼 터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방식이 실용적이다. 보편적 지원금은 집행하기가 쉽고, 수급자가 헷갈릴 일이 적고, 수급자격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없애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이유는 수급자에게 낙인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P261 - 수급 자격 조건
기본 소득의 핵심이 노동시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정치 이론가 존 엘스터의 말대로, 보편적 기본 소득은 "흔히들 받아들이는 정의의 개념 즉, 몸이 멀쩡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생각에 어긋난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노동자 대다수가 이런 제안을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을 착취하는 수법으로 본다.

P263 - 다양성 문제
"민족이 다양할 때 우리는 몸을 사린다.... 그렇다고 나와 다른 사람만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 민족이 다양한 공동체에서는 나와 닮은 사람도 신뢰하지 않는다."

작가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조건적 기본소득을 추구한다. 이 부분은 공감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가능할 것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성공사례에 대한 설명이 없고, 현재의 문제를 지적했기에 공감은 가지만 구체적 대안이 없어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P272
현재 미국에서는 조세 제도가 의도치 않게 자동화를 부추기고 있다. 사람 대신 기계를 쓰는 고용주에게 이를테면 직원 임금에 따라붙는 사회보장세, 실업 보험을 내지 않아도 되는 몇 가지 주요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P278 
최고의 기계를 만들려면 세 가지 값비싼 자원이 있어야 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강력하기 그지없는 하드웨어. 이 세 가지에 드는 돈을 한꺼번에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뿐이다.

P287
최근 한 연구에 따른, 온라인 회사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고자 사용하는 알고리즘들이 사실상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다른 회사와 직접 연락하거나 담합을 지시하지 않아도 인위적으로 가격을 높게 유지했다. 경쟁 정책이 알고리즘의 그런 작동 방식을 겨냥해야 할지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 있다.

P293

우리가 이런 신기술을 걱정하는 까닭은 이 기술들이 우리가 공유하는 생활 방식을 지탱하는 사회구조를 왜곡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이 기술들의 정치적 힘을 우려한다. 우리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를, 우리 사회가 아니라 이 기업들이 통제해 결정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P298
그런데 사람들이 기술 대기업이 내놓은 상품과 서비스에 행복을 느끼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런 기술들이 낳을 정치적 결과에도 동의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미래 정치학>이 명확히 밝히듯이, 핵심 질문은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이 적법하냐 아니냐다. 그리고 사람들이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에 행복을 느낀다 해서 동의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위의 사례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대기업들이 불공정한 독점을 만들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반대 의견들을 묵살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결국 대기업에 의한 가치관이나 정책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과 사례 제시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P302 
기술적 실업은 사람들에게서 소득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앗아 갈 수 있다. 노동시장을 공동화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삶의 삶에서 목적의식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일이 줄어든 세상이 오면 우리는 경제와 관련이 거의 없는 이 문제를 마주할 것이다. 삶의 의미를 얻었던 주요 원천이 사라질 때 우리는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P302
(알프레드) 마셜은 "해야 할 고된 일이 없을 때,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없을 때, 사람은 빠르게 쇠퇴한다.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지려면 고되고 힘든 활동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마셜에게 일은 그저 소득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이룰 길이었다.

P304
개신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개신교 신자들에게 유일한 위안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체계적인 일"이었다.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일로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버는 일을 소명과 천진 즉, '신이 주신' 임무로 설명했다.

P306
능력주의는 재능이나 노력으로 보아 일을 맡을 만하나 사람이 일을 얻는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일이 곧 능력을 뜻한다면 일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것이다. (중략) (마이클) 샌댈이 보기에, 봉건시대에는 최상층마저도 자신이 누리는 부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그러니까 운 좋게도 부잣집에 태어나서 얻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을 타고난 사람조차도 자신의 능력 그리고 대체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유한 부모를 타고난 것이 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그러므로 자기가 정말로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다.

P310
인류학자 제임스 수즈먼의 말대로, "수렵 채집 사회가 보여주는 증거로 보건대.... 우리 인간은 삶에서 노동으로 정의되지 않는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줄 안다."

P314
바실리 레온티예프도 부유층을 언급했다. "평범한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 자유시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의 '상류층'이 한가한 탓에 의기소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당시 어떤 이들은 사냥을 나갔고, 어떤 이들은 정치에 참여했고,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시와 글을 쓰고 학문을 일궜다."

P316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우리는 "노동이라는 족쇄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노동자 사회에서" 산다. "그런데 이 사회는 이런 자유를 얻어낼 만큼 값진 더 고귀하고 의미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케인즈가 걱정한 대로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여가의 시대와 풍요의 시대를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대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즐기기보다 죽어라 애쓰도록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P326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 일이 삶의 의미를 얻는 원천인 까닭은, 일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 대부분을 일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인생을 마음껏 다르게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일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평생(?) 동안 강박을 가졌던 '일을 해야 하는 의무'를 벗어버리라고 한다. 이것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서늘하다. 내가 일이란 것을 대체하고 무엇에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마치는 말에서 작가는 세 가지 숙제를 던진다. 우리 모두가 곰곰이 그리고 꾸준히 심사숙고해야 할 숙제다.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책을 읽고 나서 기분이 좋다.

P334  
우리 선조들을 괴롭혔던 경제 문제, 모든 사람이 먹고살 만큼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문제는 사라질 것이고, 세 가지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첫째 문제는 불평등으로, 경제적 번영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어떻게 나눌지를 산출해야 한다. 둘째 문제는 정치적 힘으로, 이런 번영을 불러온 기술을 누가 어떤 조건으로 통제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셋째 문제는 삶의 의미로, 이런 번영을 이용해 그저 일이 없이도 그럭저럭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살아갈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