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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연년세세 - 우리네 가족의 이야기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의 첫 장이 '파묘'로 시작된다. (파묘/폐묘 :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냄) 소설 속의 어머니인 이순일 씨는 늙고 불편해진 몸이 되어, 더 이상 할아버지의 묘소를 돌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의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파묘의 절차를 부탁하고, 둘째 딸인 한세진은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철원의 산으로 향했다.

오래되어 시신을 찾는 것도 그렇고, 흙으로 이미 돌아간 육신을 다시 거두는 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수 그릇과 음식도 서두르는 인부들의 모습에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황정은 작가는 45세의 여자인데 이런 경험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남자들이 참석한다)

나는 지금까지 파묘에 2번 참석하였다. 맨 처음은 87년 정도로 기억된다. 그때의 기억이 뚜렷한 것은 파묘가 처음이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 때문이다. 평소에 별다른 요청이 없으셨는데, 전날 어머니가 다음날 시간을 내라는 말씀이 너무도 진지하셨던 까닭에 무슨 일인지 묻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대학생이었던 나를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외가댁인 충주로 가셨다. 그런데 외가댁으로 가지 않고 친척집으로 갔다. 외종 숙부(어머니 사촌오빠)를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두 분은 이미 약속을 하신 것이다. 산속의 묘지는 이미 파헤쳐졌다. 외종 숙부님은 이미 본인이 먼저 준비를 해놓았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50년 전 매장된 묘지에서 나온 검은흙과 유골 몇 점을 다시 화장하고, 절구에 곱게 빻아서 주변에 뿌려드리곤, 다시 묘지 자리에는 어린 묘목을 심었다. 어머니는 극구 사양하는 외종 숙부님께 사례비를 드린 것으로 기억난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좋아하셨던 동네 사촌오빠는 그 나이에도 어머니를 도와주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술 드시면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셔서 이상한 느낌은 가졌지만,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감히 물어보지도 않았던 사실을 그때서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친어머니는 어머니를 낳고 바로 돌아가셨다. 외숙부님들과 이모들은 어머니와 다르게 키가 모두 크고, 호랑이 눈썹처럼 굵고 진하다. 

외조부님은 현재의 외할머니에 대한 예의인지 관여하지 않으시고, 외할머니 묘지에 대한 처리는 전적으로 어머니께서 처리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어머니가 거동이 어려워지기 전에,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전격적으로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그 뒤 25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조부모님의 묘지 이관과 제사에도 결단을 내리셨다.

그때의 파묘 경험은 불완전한 기억이지만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황정은 작가의 묘사는 너무도 구체적이다. 파묘에 참석하지 않으면 세세한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성묘나 벌초보다 어려운 것이 묘지까지 길을 뚫고 가는 것. 인부들의 무심함을 어쩌지 못하면서 절절매는 것. 파묘의 결정으로 조상님들에 대한 죄책감.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심리

이순일 씨가 삼 남매를 두었듯이, 우리 어머니 채춘자 여사도 삼 남매를 두었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둘째와 셋째가 바뀐 것뿐이다. 어느 집이나 막내는 부모님의 부양에 대해서 심적 부담이 덜한 것 같다. 아마 어려서부터 형들에게 치여서 생존만으로도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님의 관심은 첫째와 둘째가 대다수 가져갔고..

두 번째 다른 점은 이순일 씨가 둘째 딸을 비서처럼 아쉬울 때 부탁을 했다면, 우리 어머니는 둘째이자 외아들인 나를 상전 모시듯 했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 집에서는 누나가(+아내) 이순일 씨 두 딸의 역할을 했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소설이나 우리 집이나 남자들과 여자들의 삶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순일 씨 남편 한중언이 과거의 관습과 편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한영진의 남편인 김원상의 배려심 없는 무감각 등은 내 아버지와 나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소설 속의 여자들은 외로움에 힘들어하곤 했는데, 어머니도, 누나도, 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마찬가지로 외로웠다는 것이다. 삶은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어렵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조금 다른 모습은 있다. 이순일 씨는 한평생 어려운 환경에서 겨우겨우 참으면서 살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셨다는 것이다. 가정을 버리고, 삶을 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인데, 모두 자식들 때문에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과 다르게 실제로는 그렇게 버티는 당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식들이 본다는 것이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저렇게도 버티는데 나는 더 나은 환경이니 더 좋아질 거야 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집도 어머니보다는 우리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누나보다는 아들인 내가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먼저 살았던 세대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족끼리는 좀 더 나아지는 세대들이 고맙고 대견한 것이다. 앞선 사람의 노고는 그렇게 되갚는다는 생각 한다.

어머니는 마지막 10년 정도는 그럭저럭 행복한 날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나도(동생도) 좋은 사람들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고, 손주들까지 낳아서 힘들게 키우시도록 안겨드렸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분 좋은 희생이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누나와 나는 배우자의 동의하 언제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설 속 영진, 세진 자매는 부모님을 독자적으로 부양하기 어려웠다. 서로의 삶이 오버랩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벗어나지도 못하고, 어머니 옆을 계속 맴돌고 있다. 어머니의 힘든 삶을 외면하지 못하고, 감당할 힘까지는 안 되는 그런 안타까운 삶이다. 내 마음대로 어머니 삶을 살아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것.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이런 것들이 어머니께 평소에 들은 이야기다. 소설 속의 이순일 씨가 암담해지는 현실이라면,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혼자서 독립하여 인간답게 사실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순일 씨의 안타까움보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내 마음에 각인되어있다.

세진의 친구 하미영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고, 문득문득 고양이에게 그 상처 받은 마음을 소극적으로 발산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평생 남는다는 이야기를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 아이들에게 저런 상처가 없기를 바라지만, 내게 상처를 받은 것은 많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지만 현실의 삶은 항상 상처를 준다. 하미영이 이야기하는 삶의 관점은 내가 살아온 과거를 다독여준다. 이 말 하나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까 한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것을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