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보스 / 탈 라즈 지음
'협상은 결과가 존재하는 의사소통과 다름없다.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건 타인과 함께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다'
협상에 대한 좋은 책들이 많다. 내가 좋아했던 책은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이었다. 내용은 좋았지만 기억 남는 것은 힘, 정보, 시간 세 가지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세 가지를 활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테러리스트나 강도 등이 인질을 볼모로 터무니없거나, 절박한 요구사항을 외칠 때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많이 부딪친 경험을 살려서 우리에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주 유용한 책이다.
업무상 협상을 하는 경우는 상대방도 이것이 협상이라는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간에 준비를 하고 임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다. 다만 <협상의 법칙>에서 이야기한 협상의 3요소를 되새기고 협상에 활용하면 되었다.
내가 출장갔을때 부품 공급일정을 앞당겨 달라는 요청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하면서 출장기간 내내 답을 하지 않는 업체가 있었다. 협상 기간 내내 상대방은 내가 만족할 결과를 주지 않았다. 복귀 시점은 다가오고, 점점 초조해져서 상대가 제안한 개선 일정에 만족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이를 역으로 활용했다. (글의 마지막에 알려드릴게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상대방이 온건한 상태일 때, 잃을 것이 많을 때 통하는 전법이다. 그런데 이 책은 상대방들이 모두 다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다. 협상의 전술이 통하기 어렵다. 제한된 시간, 거의 전무한 정보, 대화채널을 마음대로 끊어버리는 주도권의 활용 등은 협상을 시작조차 어렵게 만든다.
기존에 나온 책들과는 이 책의 다른 점은 상대방이 합리적인 협상 상대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혹은 제정신이지만(전문적인 직업적 납치범) 우리가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대이든 대화를 지속하고,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 필요가 있는 것이다.
P006
교정 질문이란 상대가 대답은 할 수 있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을 가리킨다. 이 질문을 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어쨌든 질문에 답변하고 권한을 지니는 사람은 상대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가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고 동시에 그 질문에 의해 자기가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게 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P008
우리의 마음은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면 상대의 말에 더욱 호응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가 쓰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미러링 기법에 의해 우리의 마음은 설득당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이해받았다고 느낌을 받게 되면 그 호의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갖기 마련이다. 일종의 호혜의 법칙으로, 이것에 의해 우리는 상대에게 보답하는 쪽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P024
"나는 그저 질문을 할 뿐이에요. 수동적이며 공격적인 접근이죠. 난 단지 개방형 질문 3~4개를 계속 반복해서 던질 뿐입니다. 상대는 대답하다가 지쳐서 내가 원하는 걸 전부 내놓죠"
P077
어떤 협상에서든 듣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고 느낄 때보다 더 좌절이나 혼란에 빠지게 되는 때는 없다. 침묵은 유효한 협상 기법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는 타당한 반응이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면 좌절감이 쌓이게 되고 상대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가능성은 낮아지기만 한다.
그 반대가 전술적 공감(tactical empathy)이다. 나는 협상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공감이란 '상대의 관점을 인식하는 능력이자 그 인식의 표현'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공감이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며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라는 말을 학구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P216
교정 질문이 지닌 진짜 장점은 진술문과 달리 공격할 표적을 지정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교정 질문은 상대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서 갈등을 유발하는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교정 질문은 단순히 느낌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교정 질문에는 방향이 있다. 일단 어느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자 하는지 정하고 나면 상대가 자기 선택으로 당신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게 만들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끌고 갈 질문을 고안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두 가지가 교정 질문과 미러링이다. 교정 질문을 통하여 시간을 벌 수 있고, 상대방은 자신이 통제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보를 알려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병행하는 것이 '미러링'이다. 미러링을 통하여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변에 테러리스트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비합리적이면서, 결사적인 자기 파괴적이거나 극렬한 감정 격앙 상태의 사람을 만날 경우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이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언행들로 우리는 자제심을 갖고 대화를 임하는 경우가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통제받다가 한 번씩 폭발하는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 두 가지를 시도해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부모는 이해와 공감보다는 결론과 통제 쪽으로 빠른 시간 내에 기울기 때문에 자녀들이 대다수 반발을 할 경우가 많다. 평소에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의 상(모습)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내 이야기다)
아이들이 화를 내고 나서야 느낀다. 미러링을 할 때는 공감의 표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냐는 확인의 느낌이지, 기계적 반복이나, 놀리는 듯한 어감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교정 질문은 상대방이 뻔하게 내 속셈을 알 수 있는 유도성 질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최선의 질문과 답이 무엇인지 고심해야 한다. 그렇다 협상은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정보/시간/주도권 모두를 테러리스트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협상을 시작하여, 공감(미러링)과 질문(교정 질문)을 통하여 상대를 협상 테이블에 가까이 오게 만들고, 시간을 벌고, 정보를 얻어가면서 조금씩 주도권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상대를 협상 테이블로 앉게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협상 진행 방법론이야 FBI 선수들이 잘할 것이지만, 바로 테이블까지 앉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내와 공감과 집중이다. 이걸 자녀들에게 할애한다면 대화가 안 되는 아이들은 없다고 본다.
P069 (대립하지 않으면서 내 뜻대로 움직이는 법)
01 심야 라디오 DJ 목소리로 말하라
02 '죄송하지만..'으로 말을 꺼내라
03 미러링을 하라
04 침묵하라. 미러링이 상대에게 마법을 발휘하도록 적어도 4초 이상 침묵하라
05 이를 반복하라
위의 방법은 회사에서 협상 시 잘 통할 것 같은 방법 같다. 우리는 모두 직장에서 시간의 공격을 받고 있다. 공손하게 정중하게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 혹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기다리면 상대방이 해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침묵은 발언보다 힘이 셀 때가 많다.
그 침묵이 힘을 발휘하는 기본 원리가 시간은 내편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회의를 합의 없이 끝장내는 것은 부담이 되는 심리의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내 편이라는(사실과 상관없다) 믿음이 있을 때 심리적인 여유를 느끼게 된다. 반대의 입장이 되면 힘들어진다.
P164
실제로 정말 지켜야 하는 경우이거나 그저 명목상으로 있을 뿐이든 간에 마감이 있으면 만족할 만한 협상 결과를 얻는 것보다 협상 체결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마감에 쫓길 때 우리는 대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에 반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마감이 다가오면 서두르게 되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169
어길 수 없는 마감이란 거의 없다. 마감에 집착하기보다는 협상을 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감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감 시간이 닥치기 전에 실제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끝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부품 공급 일정 단축방안 대응방법은, 우리 요청을 만족하지 못하면 출장기간을 연장하고, 지속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의 결과로 보고를 해봐야 출장 연장을 해서 부품 공급 일정을 만족할 때까지 방안을 찾으라는 오더가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를 설명했다.
귀국 비행기 시간을 연기할지 말지를 상대방의 결과를 보고 결정할 테니, 항공편/호텔 변경 마감시간 내에 만족할 결과를 달라고 통보했다. 내가 귀국을 안 하고 버티면 상대도 주말을 망치게 된다.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는 코리아의 악명을 활용한 것이다. 다행히도 주도권은 고객사인 우리에게 있었기에 가능했다.
협상 마감시간을 나 혼자 고민하다가, 상대에게 던졌다. 그 결과 상대방의 피드백 속도는 엄청 빨라졌고, 공급일정도 드라마틱하게 단축되기 시작했다. 책에서 배우고 응용한 것이 도움이 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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