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문학을 잘 몰라서 공송(공대라서 죄송..)하다. 요즘처럼 과학과 기술이 대접을 받는 시기에는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대화중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속으로 창피한 경우가 있다. 그래도 요즘은 이런저런 책을 2년 넘게 열심히 읽었는데, 새하얀 백지처럼 하나도 모른다고 하기엔 조금 창피하다. 그동안 독서모임을 2개도 다니면서 관련 책도 읽어보았는데...
일단 양재나비 독서모임의 이번 주 토론 주제이니 책을 읽으면서 먼저 생각해보았다. 다른 분들도 많이 생각한다고 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 책을 지은 김용규 작가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 글을 지었을까? 많은 철학사상과 문학 작품 중에 이런 글들을 골랐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이 생겨났지만, 역시 귀차니즘 덕분에 과감히 생략하고 흉내만 내보기로 한다.
먼저 작가를 구글링 해보니 자세히는 나오지 않았지만 독일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2001년 <알도와 떠도는 사원>부터 2020년 <생각의 시대>까지 20년간 약 31권의 책을 지으셨다. 출판사와 책들의 평가를 보니, 철학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신 분 같다.
13개의 작품과 작가가 나오다 보니 복잡해서 각각의 작가들과 작품을 연대순으로 확인해보았다. 내 맘대로 4개씩 3 부분으로 나누고, 나머지 1개는 별도로 생각해보았다. 1부는 '나에서 너와의 관계로', 2부는 '우리의 연대', 3부는 '새로운 세계'로 나누어 보았다. 마지막 한편은 좀 색다른 의미인 것 같다. 시간, 의식, 기억이라는 주제로 이 책의 내용의 전체를 관통하면서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내용이라서 맨 마지막에 배치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파우스트>의 구원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많지 않았다. 특히 '자기 체념'의 구원론은 무신론자인 내게는 불편할 정도였다. 한편 한나 아렌트가 이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구글링에는 없는 것이 없으나, 읽기 귀찮아서 패스) 그리고 2부의 '자기실현'도 정의가 애매모호했다. 선악의 기준이 없는 '자기실현'이라는 것은 극악한 신념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대가 다르면 환경에 따라 관점도 많이 달라진다. 지금의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같다.
<데미안>은 여전히 내겐 성장소설 같다. 스스로 내면의 본성과 욕망에 대해 굴복하고 좌절할 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또 읽고 싶은 마음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가치관이나 선악의 갈등으로 고민하지 않는 완전한 성인이 된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
P070
"우리는 덧없고, 우리는 형성 도중이며, 우리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완벽하거나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잠재 상태에서 행동으로, 가능성에서 실현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참 존재에 속하게 되며,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조금이나마 닮게 되는데, 이것을 자기실현이라고 한다."
<어린 왕자>는 마치 시집처럼 음미하고 싶은 관계의 명언이 많았다. 온 마음을 열고 너만을 바라보는 것이 관계의 비결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난 왜 그걸 몰랐을까?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춘기 시절부터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도 잘 몰랐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이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냥 장미일뿐이라고, 내 장미는 내가 바라보고 다듬어 주는 것이 진짜라고..
P083
"이제 내 비밀을 가르쳐줄게. 매우 간단한 비밀이야. 뭐든지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란다. 중요한 것은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정성 들여 쏟은 시간이야"
<데미안>, <어린 왕자>는 그래도 읽어본 책이기에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는 읽어보지 않아서 궁금증이 더했다. 마찬가지로 2부 중에서는 카프카의 <변신>도 궁금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내가 구분한 3부에 해당하는 4권은 젊은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고민을 해왔던 주제라서 생소하지 않아 크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먼저 <오델로>는 질투에 대해 슬픈 본성을 알려주었다. 가진 자는 '질투'하고, 못 가진 자는 '시기'한다는 용어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사례처럼 오셀로 증후군(의처증) 환자의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대다수 맞는 것으로 파악되었다는 말이 슬프면서도, 납득이 갔다. 여자의 촉이 무섭다고 하지만, 남자의 촉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강자인 남자들이 뒤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자주 들킬 뿐..)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정신적으로도 집착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는 사람들은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적 욕구는 집착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한다. 그러나 참다운 사랑은 소유보다는 행위이고 그것이 이상적인 것이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소유와 행위의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고뇌한다고 한다.
내가 이 부분에서 느낀 것은 상대방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독립한 2명이 만나는 것이 사랑이고 결혼이지 서로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랑은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면 사랑도 따라서 변하는데, 사람이 변하는 속도나 깊이가 다르면 사랑도 차이가 생기고 그것은 균열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은 개인 간의 차별적 성장이 되더라도, 두 사람 간의 폭넓은 의식의 공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P114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 곧 '질투 없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 없는 질투가 있을까?'에 대해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질투 없는 사랑이 진정 사랑이라고! 그리고 질투에는 아예 사랑이 없는 거라고!
P115
그래서인지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진동하며 갈 곳 몰라 헤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소유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서 휘발하고 / 저녁 하늘 / 바다 가까이 바다 냄새 맡을 때쯤 / (...) /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 / 무연히 서 있다. /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 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 / 혹 수평선도 지평선도 여느 금도 없는 곳?
(황동규, <더 쨍한 사랑 노래> 중에서)
두 번째 단락에서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족의 의미를 좀 더 되새기게 되었다. 가족이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며, 상대가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가족들 간의 그런 순수한 마음이 지속될까 하는 의심과 슬픈 마음이 들었다. 결국 가족끼리도 서로의 역할에 기대를 하는 모습과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의 시선들이 달라진다는 것이 정말 현실감이 있었다.
내가 현실감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 경험과 주위의 경험에 대한 인식이 작가가 이야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혹은 자녀를 포함하고 더 나아가 노부모를 포함해서 가족에 대한 의무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작게 마련이다.. 혹시 몇몇은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할 공동체는 아마도 가정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혹시 가족을 대체할 친한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다수 친구들도 가정이 있기 때문에 결국 가정이 기본적인 생존과 정서 안정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되고,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개인의 역할은 결국 중요하다. 자신이 가족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전에는 그전에 주어진 가족들이 내게 바라는 역할은 결국 뿌리칠 수 없게 되고, 이것에 따라 개인들의 삶은 적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주변의 친구들도 그런 가족 내의 역할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역할과 의무로서 교육을 받아서 지켜왔던 무의식의 가치관이 - 정확하게는 예절이나 에티켓 등- 요즘은 많이 바뀌는 것 같아서 가족의 의미는 매번 새롭게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117
가정이란 사람이 그의 '어떠어떠함', 곧 외모나 성격, 재능 또는 재산 등등 때문에 인정받고 사랑받는 장소가 아니라 그의 존재 곧 자신의 '있음 그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장소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으로써 존재의 기쁨을 맛보는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P130
존재란 오직 '공동 존재'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나의 존재를 인정해줄 너', '너의 존재를 인정해줄 나', 즉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상호적 관계의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아내가 있어 비로소 남편이 있는 것이고, 아이가 있어 비로소 부모가 있는 것이지요.
끝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용 중 기억에 대한 묘사로 아주 재미있었다.
P316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그 결과 삶도 분산시켜 단지 흘러가버리고 마는 것, 그래서 값어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시간의 끔찍한 파괴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간론에 깔린 심오한 사유이지요.
"새로운 여러 가지 상을 지나간 것과 연관시키고, 이렇게 해서 미래의 행위나 사건이나 희망을 구성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들 모두가 흡사 현존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P332
"우리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상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연히 옛날의 어떤 냄새를 맡게 되면, 우리는 갑자기 도취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이미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상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득 고인의 낡은 장갑 한 짝을 보기라도 하면, 우리는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일종의 은총, 무의식적인 추억이라고 하는 한 묶음의 꽃다발에 의해서 말입니다."
시간의 무자비한 파괴성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고 한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기억이라고 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그 순간의 통찰은 의미의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 순간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는 매 순간이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인생의 무의미성과 사라지는 기억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실존주의의 이야기처럼 파괴적인 시간의 폭력 앞에 소극적으로, 아니 내면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도 잊히고, 내 기억도, 나에 대한 기억도 잊히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도,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도, 내가 알던 사물과 대상도 결국 변하고 사라질 것인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실존주의 책을 좀 더 읽고 이 책에서 나온 사막에서 버티든, 사막을 건너든 <페스트>처럼 반항을 계속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도 결국 무의미로 끝나는 것 같아서 허전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의 지능(이성, 의식)이 주어졌다고 하는 주장이 내게는 일리 있어 보이는데, 내 삶의 의미는 아직 찾지 못했기에 허전함과 허무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적용할 것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내게 영감과 희망을 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내게 자주 되풀이하는 이야기가 있다. '네 나이라면 크든 작든, 알게 모르게 제법 아웃풋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하나 어여쁜 구슬 같은 존재인데, 그것들을 하나의 실로 꿰면 예쁜 목걸이가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자주 말해준다.
내가 역사와 철학에 대해 올해에만 읽은 책이 각각 2권 정도 기억난다. 그리고 회계에 관한 책도 있고, 식품의 유래에 대한 책도 있다. 이런 것들만 엮어서 메모하고 정리해도 나름 엉성한 목걸이가 되지 않을까 한다. 조금씩 다른 책을 읽어가면서 덧붙이면 작은 그물이 될 것이고, 그 그물을 도구로 책에서 더 많은 보물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메모 독서>의 신정철 작가님이 이야기한 정보(지식) 수집 후 단편적 지식의 박치기를 통해 나만의 지혜(통찰)를 얻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 것 같다. 물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식 역량까지는 아니라도, 내가 책들을 통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사고 툴을 얻으면 좋겠다. 그것이 조금씩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흘러넘칠 것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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