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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찌 슈

감동을 주는 책은 아니다. 어떤 경우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이해가 안 되고, 공감이 가지 않아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실제로 중간에 많이 덮었다. 독서모임 책이 아니라면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책은 '입에 쓴 약은 몸에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내게 조금씩 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밑줄 그은 부분을 반복해서 다시 본다는 조건이다.  

작가는 철학이 우리의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도와주는 강력한 무기(도구)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 이유를 머리말에 4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내 생각에는 역사를 배우는 목적과 약간 비슷하기도 하다. 다만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대해 관점을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이지만, 철학은 그보다 더 나아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 더 큰 효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P007~015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가?
0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0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03 어젠다를 정한다.
0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 프롤로그 :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받아온 사고방식과 관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메타인지적 사고의 훈련이 숙달되지 않으면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끝부분에도 나오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의 세대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바뀐다고 한다. 철학을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011
지금까지의 사고관과 일하는 방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사고관과 업무방식을 점차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다. 이때 새로운 사고관과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일보다 오래된 사고관과 일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끝내는 일이 더 어렵다. 지금까지 통용된 사고관을 일단 비판적으로 재검토해보고 그 사고가 현실에 잘 맞지 않거나 현실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원인을 고찰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P314
왜냐하면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서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교류와 교환이 없어지면, 어떤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어느 한쪽의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전부 절멸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은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를 설득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 줌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자가 멸종하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여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질 때에 비로소 승리한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큰 주제별로 나누었고, 전체의 글은 50가지의 소테마로 철학자와 주제를 다루었다. 읽는 이들마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50가지 소주제 중에서 내게 조금 더 다가왔던 9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 01 :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의 기회가 보인다. - 르상티망 (프리드리히 니체)

르상티망은 처음 들어본 용어다. 용어의 정의에서 보면 아주 흥미있는 단어이며, 수긍이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르상티망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가치판단을 뒤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것이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정신승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괴로워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비틀어서라도 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심정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를 좀 더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기는 어렵다. 내 주위에도 흔한 사회적인 이슈에(비교적 사실관계가 명확한) 대해서도 평소의 정치적인 관점에 따라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는 예는 허다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판단과 감정이 르상티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 철학에 기인한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숙고하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P050~051
르상티망을 여느 철학 입문서에서처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한마디로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폭넓은 개념이다. (중략)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한다. 니체는 바로 이점을 문제로 삼아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이 르상티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P053
하지만 당연히 이러한 형태로 르상티망을 계속 해소한다 해도 '자신다운 인생'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르상티망은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판단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예속 또는 종속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가동된 것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P055
추상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개념을 끌어내 파스타 체인점과 가치를 비교하고 나서 자신은 후자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내세우는 데 중점을 둔 행동이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려고 한다'는 니체의 지적과 완전히 일치한다. 니체의 주장을 덧붙이자면, 르상티망을 가진 사람은 르상티망에 기인한 가치판단의 역전을 제시하는 언론 등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 03 : 성과급으로 혁신을 유도할 수 있을까? - 예고된 대가 (에드워드 대시)

직장과 가정에서 자발적 의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창의적 사고와 자발적 동기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환경에서 그런 것이 형성될까' 하는 의문이다. 자녀들의 자기 장래에 대해 이것저것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움츠러들지 않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까? 직장에서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팀으로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개선과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할 경우 본인에게 돌아오는 강력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예상될 때는 선뜻 도전을 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는 주위에서의 우려 섞인 피드백은 부담과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보통 혼자 조용히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관에 부딪치면 조용히 포기하고 없던 일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기 쉽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게 조금씩 움츠러들기 쉽다. 내 딸들에게 안정감을 확신하게 하는 내 역할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스스로 안정감과 자신감을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꾸준한 인풋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P068
원래 뇌에는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의 균형을 맞춰 주는 일종의 어카운팅 시스템이 있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행위이므로 이에 대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안전 기지'다

P069
다시 말해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06 :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타불라 라사 (존 로크)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좀 더 현명해진다고 한다. 아닌 경우도 많다. 세월이 지나면서 희로애락을 겪다 보면 경험이 많아지고,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인 고난을 헤쳐나가면서 삶의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한된 삶의 방식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오히려 사회적 인식의 편견과 프레임이 강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꼰대로 불리기도 하며, '틀딱'이라는 차마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혐오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고의 편협화는 나이 든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사고의 틀이 고정되어 변경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변화의 기회와 열린 대화를 거부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고, '나는 계속 배우고 싶다. 배울 수 있고, 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수시로 각성이 필요하다.  

P084
로크가 주장하는 핵심 주제가 '사람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에는 '다시 새롭게 배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논점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지는 사회에서는 한번 배운 지식이 금세 진부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P086
프롬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특히 나치즘을 지지하는 세력의 중심에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이루어진 하층 및 중산 계급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P087
인간이 이상으로 여기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24 : 안정이 계속될수록 축적되는 리스크 - 반 취약성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대기업을 다니는 나로서는 항상 걱정되는 것이 있다. 회사명함 특히 회사명을 빼내고 나면 나는 정말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다닌 회사를 그만둔 수많은 선배와 동료들의 모습을 봐왔다. 축척된 개인의 능력과 해당 업종의 네트워크로 지속적으로 비슷한 일을 하지만, 그 기대효과는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퇴사를 망설이는 제한이 된다. 

제2의 명함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라고 하지만 막상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되도록 많은 커뮤니티를 경험하는 것이다. 단지 경험만 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안다. 결국 '끈끈한 인간관계가 핵심이기에 직장에서도 커뮤니티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무조건 맞춰주고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사람임을 알리는 것, 그런 모습이 그 사람에게도 좋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신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85
반취약성이란 '외부의 혼란이나 압력에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을 뜻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책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반취약성'이라고 표현하면 무척 딱딱하고 강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조어 '안티프래질'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

P19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한 한 젊을 때 많은 실패를 맛보는 것, 여러 조직과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을 한 장소가 아닌 분리된 여러 장소에 형성하는 것 등의 요건이 중요해진다. 하나하나의 조직과 커뮤니티는 취약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과 커뮤니티의 존속보다도 그 사람의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의 축적이다. 만약 속해 있던 조직과 커뮤니티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사회 자본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고 아메바형으로 분산되어 유지될 수 있다.

▶ 29 :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자연도태 (찰스 다윈)

자연도태에 따른 진화를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평균치)과 돌연변이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면서 우열이 가려진다. 우열이라는 것은 생존 우열, 적응 우열은 있지만, 평균치를 벗어난 것에 대해 열등을 판단하는 것은 생존의 관점에서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장판 다음 달 주제 독서인 <평균의 종말>에서도 이런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이래서 책을 계속 읽으면 여러 가지 관점으로 배울 수 있어 참 좋다.

P217 자연태는 진화를 설명하는 독보적인 단어로, 다윈이 제창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요인이다.
01 돌연변이 : 생물 개체는 같은 종에 속해 있어도 다양한 변이가 나타난다

02 유전 : 이러한 변이 가운데는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인자가 있다.
03 자연선택 : 이 중에는 자신의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차이를 주는 것이 있다.

P218
그렇다면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환경에 더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도태의 메커니즘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적응력의 차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돌연변이라는 비예정조화적인 변화가 적응력의 차이를 생성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깊다. 이 사고방식은 일종의 에러가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P220
자연계에서의 적응 능력 차이는 계획과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우연에 의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직이나 사회 운영도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를 수정해 자신의 의도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우연'을 만들어 내는 체계를 이루는 데 주력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 43 :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예전에 큰 딸과 '다르다'와 '틀리다'로 한참 옥신각신 한 적이 있었다. (https://eaglemanse.tistory.com/34) 서로 간에 언어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틀리게 X) 가지면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거시기'한 느낌까지 공유하기는 어렵다. 사회적인 감정과 그 사회(세대)가 사용하는 언어는 아주 밀접하다. '라떼'세대인 나는 끝없이 배워야 한다.

P294 모든 경우에 우리는 개념이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낱말이 지닌 의미의 폭은 언어 시스템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개념은 시차적이다.
즉 개념은, 그것이 정해지고 내용을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다른 말과의 관계에 의해 결여된 관념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더욱 엄밀히 말하면, 어떤 개념의 특성은 '다른 개념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 우치다 다쓰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정의했다. 앞서 언급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일본어에서는 나비와 나방이라는 두 가지의 시니피앙을 이용해 두 가지의 시니피에를 나타내는 데 반해, 프랑스어에서는 빠삐용이라는 시니피앙을 이용해 일본어의 나비도 나방도 아닌, 양자가 합쳐진 것 같은 시니피에를 나타낸다.

▶ 44 : 때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에포케 (에드문트 후설)

큰 딸과 자율적인 삶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그렇고, 처남과의 정치적인 입장 차이에서 자주 목소리가 커졌다. 당연한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답답했고, 내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수용해주면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타자(상대)가 겪은 경험과 환경을 나는 모르고, 나도 역시 그런 사고의 맥락과 환경의 제약이 있기에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한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지만, 세상사에는 그렇게 단순하게 파레토의 법칙처럼 80%의 핵심적인 원인은 없다. 오히려 나비효과처럼 작은 변동요인들이 점차 커지면서 원인과 결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P299
오늘날 국제 콘퍼런스에서 '뷰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원래는 미국 육군이 현재의 세계 국제 정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이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접할 수 있다. 뷰카(VUCA)는 오늘날의 세계 상황을 잘 드러내는 네 가지 영어 단어 '변동성 Volatility', '불확실성 Uncertainty', '복잡성 Complexity', '모호성 Ambiguity'의 이니셜을 조합한 말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P300
이때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에드문트 후설은 '에포케'라고 했다. 에포케는 고대 그리스어로 '정지, 중지, 중단'을 의미한다.

P302
그렇다면 에포케를 아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에포케가 다양한 내용을 시사해 주는 사고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타자 이해의 어려움'을 깨닫게 해 준다는 점을 꼽고 싶다. 후설이 반드시 그렇게 지적한 것은 아니지만 에포케는 결국, "당신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번 보류해 보십시오"라는 뜻이다. 그 말대로 따르면 어떤 점이 좋을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는 점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자신에게 보이는 세상과 상대에게 보이는 세상은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때 양자가 모두 자신의 세계관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 그 어긋난 차이가 해소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P303
우리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세계관은 애초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세계관을 확신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는, 이른바 어중간한 경과 조치로 일단 잠시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가 바로 에포케다. 그러니 이 에포케의 사고관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 지적 태도가 아닐까?

▶ 45 : 과학적인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 반증 가능성 (칼 포퍼)

과학의 매력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틀린 것을 누구나 지적하고, 결론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 사고의 전제에서 항상 부딪쳤다. '태초에 신이 계셨다'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명제(절대적인 참된 전제)로 시작하게 되면 반증이 불가하다는 것이 종교론의 친구들과 논쟁에서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냥 한마디만 하면 된다. 네가 이야기하는 주장은 반증할 방법이 있는가? 

P304
과학이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답을 내놓았지만 영국의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을 그 조건으로 제시했다. 반증 가능성은 제안된 명제나 가설이 실험 또는 관찰에 의해 반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나중에 뒤집힐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P305
무엇이 과학이 아닐까? 이 물음을 포퍼의 요건에 비추어 답해보면 그것은 '반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포퍼의 사고에 따르면 논리 혹은 사실을 이용해서 명제와 가설에 반론할 여지가 없을 경우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P306
한편 포퍼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모든 욕구의 근원에는 성적 리비도가 있다"라는 명제나 마르크스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명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반증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 49 :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미래 예측 (엘런 케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많이 틀린다고 한다. 결국 예측은 틀리기 쉽지만 비전으로 생각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최고로 적중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복잡 다단한 사회에서 나 혼자서 그렇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나비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허망할지 모르지만 당연한 결론이다.

P324
마지막으로 앨런 케이의 메시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50가지 무기(도구)를 자유자재로 쓴다면 천하무적일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