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나도 40대에는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약간의 신체능력은 줄어들었지만, 중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시기였다. 그냥 나도 마음속으로는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내가 생활하는 환경이 변했다.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낳았고, 직장을 관두면 갈 곳이 별로 없었다. 마음은 청춘이라지만, 남들은 나를 청춘으로 봐주지 않았다. 변한 환경에 적응하려면 예전의 나는 지워야 했다. 그것이 좀 허전했다. 잃어버린 추억처럼..
“정말로 네가 예전과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해?”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어쩌면 참을성이 더 많아졌겠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확실히 낮아졌고.” “자신에게 더 관대해졌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말했다. “그냥 기대가 낮아진 것뿐이야.”
그리고 50대가 되면서 내 자신의 한계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현실화 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고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작은 존재라는 것이 전에는 참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몸이 아픈 곳이 한 두 군데 생기고, 내 동년배보다 후배들이 한참을 앞서나가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조차 엄청난 행운이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많이 고맙게 느껴졌다.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딸들이 성인으로 성장했고, 이제서야 내가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좀 더 해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적어도 몇 가지 커다란 실수만이라도 바로 잡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갔다.
그때는 나름 맞다는 생각과 행동을 했다고 느꼈고, 그 당시의 사회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고, 행동방식이었다는 것을 안다. 아니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하나,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나와 같이 있고 싶을때 거의 같이 있지 못했고, 같이 있는 시간조차도 피곤해서 소파에 눕거나, 맥주 한잔에 영화 보느라 소홀했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의 오후와 아침은 책을 읽거나 수업을 준비하고 때로는 뉴스를 챙겨보면서 조용히 흘러갔지만, 저녁에는 내가 고대하는 시간이 왔지. 커피에서 와인으로 이동하는 시간, 저녁식사에서 식후 음주와 담배로 이동하는 시간. 우리는 뒷마당 덱으로 나가 유년기와 십 대 시절의 음악을 들었고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술을 더 마시고 담배를 더 피우기도 했지만 저녁의 끝은 늘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거나 소파 위에서 서로를 꽉 끌어안고 뒤엉킨 몸으로 맞이했잖아.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책 속의 주인공들도 아이들을 재우고 겨우 자신을 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단 나는 아이를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집으로 들어올 때는 이미 아이들이 자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지나가면서 내가 집에 올때까지 깨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소 닭 보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 힘들었고,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자신만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성인이 된 딸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잘 모른다. 그냥 적응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사랑스러운 딸들, 그러나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점점 더 조금씩 멀어져 갈 아이들..
이 아이는 좋은 삶을, 내 유년기보다 훨씬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두 부모가 있었다. 친구도 많았다. 너른 뒷마당도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어쩐지 슬픔이, 불행이, 불만족이 있었다.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내가 자란 환경보다는 내 딸들이 자란 환경이 좀 더 나아보이는데, 그래도 나보다는 더 슬픈 표정들이다. 그만큼 경쟁의 심화와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은 탓이겠지. 사실 나도 저만큼 불안하고 고민이 많았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 해진 것일 뿐.
“아니요,” 개릿이 말했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난 뒤에도요. 나이가 들어 향수에 젖은 채 인생을 돌아볼 때조차도. 그때조차 자식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더라는 거죠.”
가끔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고민이 많이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내의 고민은 항상 아이들에게 향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아내와 언쟁도 하고, 나도 고민하면서 생활의 중심을 잃기도 한다.
일단 아이를 갖게 되면 그 아이가 없는 상황은 상상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행복이라는 논제는 뭐랄까, 좀 무관하죠.”
근데 아이들이 없는 상황이나 현실은 이젠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없는 내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20대로 3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이 될까? 그냥 상상할 수가 없을 뿐이다. 이미 나는 50대의 삶을 살고 있고, 사랑스럽고 말썽 많은 두 딸들이 있고, 어떨 때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아내와 살고 있다.
사라진 것들은 수없이 많고, 변한 것도 많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의 어느 모습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지금의 나는, 내 생활은, 내 사람들과의 관계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냥 아쉽고, 아련하지만, 사라진 것들은 추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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