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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꿀벌의 생활

이 책이 첫 인상은 <동물의 신비>처럼 재미있는 책일 것 같았다. 중간중간 새롭고, 몰랐던 꿀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작가의 사색까지 곁들여서 재미있었는데, 의외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내가 작가만큼 꿀벌에 대해 애정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고, 작가의 환경과 생각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래의 글들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생각할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결국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개인의 제약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선진국, 사회의 고도화, 정보의 소통강화 어느 면이든 개인을 어느 정도 묶어두는 것 같다.

자연이 벌목의 진화에서 보여주는 의지는 일목요연하다. 즉, 자연은 종의 발전을 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의지는 개체 각각의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게 한다. 사회 조직이 복잡하게 발달함에 따라 개체의 생활 범위는 점차 줄어든다. 어딘가에 진화가 있다면, 이는 개체의 이익이 전체를 위해 희생됨으로써 얻어진 결과물이다. 개체는 먼저 독립을 포기해야 한다.

꿀벌의 세계에서 특이한 것은 여왕벌을 따라가는 쪽과 남아있는 쪽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처럼 감정, 개인에 대한 생존 욕구가 있다면 쏠림 현상이 강할 텐데, 꿀벌만의 특이한 특성이라고 생각되면서, 우리는 과연 이런 생존을 위해 이렇게 선택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 무리는 여왕벌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낡은 주거지를 지킨다. 버려진 알 1만 개, 유충 1만 8천 마리, 번데기 3만 6천 개, 여왕벌 7, 8마리를 보살피고 키위기 위해서이다. 이 잔류 무리도 분명 임무를 다하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겠지만, 그것이 어떤 규칙을 따라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녀들은 그저 결정을 받아들이고 얌전히 따른다. 

작가의 주의 깊은 성찰도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뇌과학도 동물행동심리학이라는 범주에서 설명하려는 모습이 많이 있지만, 이때에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었을 텐데, 이런 사고를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사유하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 말할 때에고 꿀벌에 대해 말한 것 이상의 것을 말할 권리가 없다. 우리도 어쩌면 단순히 고통에 대한 공포, 쾌락에 대한 이끌림을 따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가 지성이라 부르는 것 역시 동물의 본능이라 부르는 것과 그 기원이나 사명에서 다르지 않다.

요즘 선거철이라서 정치인들에 대해 논란이 많고,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많다. 우리가 상류층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권리를 많이 갖고 있고, 의무는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벌들의 세계처럼 분명하게 계층별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왕벌은 유일한 지배자이나 동시에 하녀이기도 하다. 또한 사랑의 포로이면서 그 사랑에 책임을 져야 하는 대리인이다. 민중은 여왕을 섬기고 그녀를 존경하지만 자신이 여왕벌 자체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여왕이 수행하는 사명에, 여왕이 대표하는 운명에 종속되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잘 표현한 공화국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토록 합리적인 독립심과 이토록 완전한 복종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민주정치도 찾기 어렵다.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고, 내가 맘에 드는 구절들만 발췌하여 그에 대한 내 기분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감동은 아래와 같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새로운 여정이 길을 떠나는 꿀벌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이런 새 출발을 시도할 수 있을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내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 나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을 시도할까? 갑자기 화성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일론 머스크가 생각난다.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그것이 우리 인류를 다른 도약 혹은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생활이 그토록 안정되고, 그토록 훌륭하게 조직된 도시, 꽃들의 과즙으로 한겨울에도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저 풍요로운 도시를 완전히 잊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많은 딸들을 요람에 눕혀놓은 채 떠나왔다. 미랍과 봉랍에 저장해 둔 막대한 보물뿐 아니라, 60킬로그램, 즉 전 주민의 체중의 12배, 꿀벌 약 60만 마리의 무게에 해당하는 꿀까지 두고 왔다. 이 꿀은 인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4만 2천 톤의 식량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