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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리뷰

비교적 명석했던 누나는 어머니의 강권에 의해 상고(특성화고)를 진학했고, 그 당시 반에서 중간이하의 성적이었던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성적이 향상되면서 다행히도 대학을 졸업했다. 물론 4년간의 대학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친척분들, 친구 아버지, 융자를 통해서 해결했다.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제약회사에 입사해서, 유례없는 특진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관리자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 뒤로 진학, 자격증, 개인 사업등의 진로 모색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지금은 해외 이민을 가서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실 대학 갈 생각이 없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보니까 다들 열심히 사는 거예요. 오는 손님들이 다 직장인이었는데 열심히 살아서, 나도 열심히 살고 싶은데 뭘 해야 할까 하다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얘기를 했어요. “네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지장이 없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으면 대학을 가라.”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뭔가 시작할 수 있겠구나.

나는 최근까지도 대다수의 청년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끊임없이 좀 더 높은 위치로 도약하고자 했던 누나의 삶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다. 물론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의지력을 발휘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도 무척 많다.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성화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들고, 속이 깊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은 학교 출석률도 좋지 않고 사고도 많이 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개별 아이들의 속 얘기를 들어보면 “성숙”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을까?

어머니가 누나의 진로를 특성화고(상고)로 정할 때 며칠 동안을 싸웠다. 눈물로 호소하고, 악을 썼지만, 어머니의 완고한 입장에 막혀서 어쩔 수 없었다. 이후로도 살림밑천이라는 맏딸답게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근처에서 보필해 드렸다.

이 빈곤 청소년들은 학업성취가 낮고 당장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핵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왔을 것이다. 이러한 힘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질 수 없고, 단순하고 안전한 삶의 궤적 안에서도 형성되기 어렵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쳐야 서서히 쌓여가는 내면의 힘이 된다

우리 삼 남매를 통해 공통적인 것은 결국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주변과의 비교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의지력의 한계를 겪으면서, 수없이 많은 좌절을 느껴왔지만, 최악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어딘가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마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우리는 삶의 의지나 신분 상승 욕구를 상실했을 것 같다. 어머니의 긍정적이고 강인한 의지가 우리에게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 형제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더 많이 힘들었다.

기댈 언덕이 없다는 것은 매 순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끊임없는 경쟁의 톱니바퀴에서 한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퇴사를 하게 되면 다시는 비슷한 레벨의 직장에 취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것. 재 취업을 하는 동안 삶의 질은 많이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부모님 부양에도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하는 입장이 되니까, 매 순간 불안하고 여유가 없어지는 나날이었다. 책에서 나오는 어린 청년들이 매 순간 일과 수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넘어 불안감이 내게 이입되었다. 나는 한참 전에 경제적 빈곤을 벗어났지만, 마음속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직종이 분화되고 다양화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이동성과 노동시장 변수가 많다. 지금은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고, 2020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40%나 된다. 현재 청년층은 이런 노동시장의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오가며 이동성이 많고 불안정성이 높은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 세대는 여기에 가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이중고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회가 거의 없는, 아예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구조인 셈이다.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OECD 국가에서는 소수 상류층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는 좀 더 넓은 계층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부모의 부와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모와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부모에게 오랜 기간 의존하고 사는 성인 자녀의 삶에 대해 우리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을 5~6년 다니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고,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한 후, 등록금 외에 훨씬 더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녀를 오랫동안 지원할 수 있는 부모의 능력에 대해 뿌듯하게 여기기도 한다.

맞벌이를 30년 동안 하면서 중산층이 되고 나서,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에게 오랜 기간 교육비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많이 힘들 때는 쉬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엄청난 안도감을 갖게 했다. 우리 아이들도 방황하고 아파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아이들의 친구 중에는 방황 끝에 최악의 선택을 한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역량과 삶의 방식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능력과 저축하는 습관, 만족을 지연시키면서 참는 훈련을 봐야하고, 유혹에 이겨내는 절제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감정적으로 불안할 때, 친척과 친구들 통해 건전한 공동체의 모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용, 피부미용, 네일아트, 애견미용, 검정고시 등등. 하지만 이런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고 남들의 ‘시선’이 항상 두려웠기 때문에 그 긴장감을 견뎌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런 도전에 대해 용기와 지지를 보내주는 지지체계가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실패해도 계속 널 사랑하고 아낄 것이다’, ‘그것이 네 잘못은 아니다’, ‘실패해도 괜찮다’, ‘사는 것이 좀 힘들더라도 너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믿음을 줄 만한 지지체계가 있었다면 조금 나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실패투성이 어린아이의 모습인 것을 느낀다. 조금 일찍 철드는 친구들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처럼 조금은 늦은 아이들도 있다. 그때 좀 더 기다려주고, 격려 할 수 있다면, 대다수의 어린(?) 친구들은 사회에 잘 정착하리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나서 마음은 어두워졌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좀 더 분명한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내 아이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아이들도 어떻게 자라고, 사회에 어떻게 정착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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