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아름다움

동창회와 블로그

어제 고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다. 자주 보는 친근한 표정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친구들을 보고 싶어서 갔으니 반갑고 좋은 면이 많이 보였을 것이다.

요번 주는 회사에서 급한 일이 발생해서, 자료 정리하고, 많은 사람을 모아서 회의를 하고, 협조를 요청하고, 애로사항과 컴플레인을 들었다. 물론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운동과 독서도 조금 소홀해졌다.

그나마 주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기에,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창회를 나갔다. 오늘은 남자들만 나왔다. 여자 동창들이 한 명도 안 나왔다. (나중에 와이프는 자신 같으면 공주처럼 잘해주면 즐겁게 나올 거라고 하던데... 우리도 힘들어 위로받고 싶은데..)

거의 20년 만에 본 친구도 있었고, 몇 개월 전에 보았던 친구, 한 달도 안 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 간격은 별로 차이가 없이 즐겁게 떠들고 놀았다. 식당 직원의 불친절도 우리의 시끄러운 꼰대(틀딱, 딸피)들의 목소리를 줄일 수는 없었다. (식당이 워낙 시끄러웠다)

2차 모임 맥주집에서 옆테이블에 앉아있던 친구 안x국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마디 했다. " 왜 블로그 안 해". "일요일 다른 일도 있고, 글이 점점 퇴색되고, 조잡해져. 그래서 안 쓰게 돼" 그랬더니, "아냐 좋아. 그래도 계속 써"라고 간단히 명료하게 이야기해 줬다.

누군가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SNS를 끊기가 어렵다. 자신을 알리는 것, 내가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 그래서 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에는 좀 더 성의 있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의도였는데, 그것이 자신 없어지고, 시간이 부족해지니, 격주단위로 일요일 아침 모임을 핑계로 나머지 날짜도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내와 캠핑을 다니니, 실제로 일요일 아침 여유가 되는 경우는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도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낼 수는 있었다. 그냥 루틴을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서 중독이 될까 봐 아침, 점심시간에는 SNS를 차단했다. 그래서 더욱 SNS의 자극을 안 받은 이유도 있던 것 같다. 카톡 링크 이외에는 남들의 블로그를 볼 일이 없어졌다. 

내 생각에 글쓰기는 건전한 정신적 배설 행위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서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머릿속에 맴돌다가 잠재적인 의식 속으로 사라진다.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쓰레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재활용 분류하듯이, 재활용 가능한(쓸모있는) 것들은 재활용 가능하게 1차 정리하고 묶어서 글로 표현하고, 매립형 쓰레기는 잊히도록 그냥 묻어버리면 된다. 

그런 글들 중에 페친이나 블로그 이웃들이 댓글과 반응을 달아주면 그것으로 다시 좀 더 생각과 관점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블로그와 페북링크는 그런 면에서는 순기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제 친구의 격려와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요새 자주 '블로그를 언제 다시 시작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자극과 트리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근황과 일상을 듣고, 삶에 대한 느낌을 나누는 것도 좋았다. 중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확장보다는 정리를 하고, 노년을 어떻게 대비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 평가들도 좋았다.

그리고 오랫만에 알게 된 다른 동창의 죽음과 삶의 불균형에서 오는 허무함도 들었다. 건강의 소중함과 가족, 친구 등 친밀한 관계의 유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친구들의 말을 통해서 들었다. 

모두들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는 노화되는 신체에 대해, 투병을 하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도 거들었다. 40년 이전의 우리는 서로 친하고, 경쟁하고, 싸우고, 사귀었다. 지금은 서로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예전 연기자 백일섭님이 이야기했던 이야기가 대충 생각난다. 대략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 "원망했던, 미워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시나요?"  "모두 죽고 없어. 나만 남았어"

멋지게 사는 친구들, 편안하게 노후를 준비한 친구들, 아직 고군분투하는 친구들, 외로운 친구들... 모두 그냥 안쓰러운 단계로 접어들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생각은 짧고, 육신은 벌써 아주 조금씩 망가지고 있기에..

친구들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웃는 날을 많이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