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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아름다움

벚꽃 눈이 내리는 4월 봄날 아침

마라톤과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는 봄도 좋지만, 가을이 좀 더 좋다. 둘 다 야외 운동이고, 땀을 많이 흘리니까 기온이 차가워지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겨울에서 봄으로 갈 때보다, 여름에서 가을로 갈 때 더욱 운동할 때의 기분이 더욱 상쾌해진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가을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졌다. 예전에는 하늘하늘 가을 갈대와 코스모스가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지금은 개나리와 진달래, 특히 벚꽃이 마음을 설레고, 기쁨을 가져다줄 때가 많다. (맞다 늙었다...)

그 전환 시점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대략 6~7년 전부터 아내와 매년 분당 중앙공원에서 벚꽃필 무렵 한나절 시간을 내서 산책과 사진 찍기를 했었다. 그전에는 이따금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봄꽃 구경을 갔었다. 그것은 20년 전인가 보다.

노란색과 갈색의 가을 햇볕을 좋아하다가, 분홍색과 투명한 봄 햇살을 좋아하게 되었다. 저녁의 빨간 노을은 가슴을 사무치게 하지만, 새벽의 동트는 햇볕은 가슴을 설레고, 희망에 부풀게 한다. 햇볕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요지경 마술이다. 

마음이 서서히 바뀐 것은 아무래도 사진 때문인 것 같다. 겨울 내내 사진을 찍으려고 해 봐야 무채색의 날씨와 앙상한 가지들, 말라버린 잡초밭 밖에 없는데, 봄이 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새싹과 꽃눈이 그렇고, 일찍 피어나는 꽃들이 기대감을 갖게 한다. 

봄날의 꽃구경과 사진 찍기는 이제 집착이 심해져서, 요번 주에는 사전에 미리 다녀왔다. 혹시나 주중에 꽃잎이 모두 떨어져서 주말 사진 풍경이 별로일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주중에 날씨도, 꽃도 좋았고,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아내는 흡족해하면서 우리의 추억을 한번 더 만들었다.

주중의 사전답사 사진, 아내와 산책과 추억사진, 그리고 막내딸까지 함께한 외식 모두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약간의 허전함이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못 본 것이다. 아니다. 분명 출퇴근 탄천을 오가면서, 중앙공원을 2번이나 갔다. 무엇이 아쉬웠을까?

 

4월 첫째 일요일인 오늘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자전거 플래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날이 밝을 때까지 누워있다가 7시에 밖으로 나갔다. 한강이 잘 흐르고 있는지 점검차 몇 개월 만에 라이딩 다녀왔다. 다녀오면서 마음에 쏙 들어오는 눈이 부신 꽃들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진을 제법 찍었다. 중간중간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으며 생각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탄천의 아름다움과 속상함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분당 야탑동은 탄천의 다른 지역보다 벚꽃이 유난히 이쁘지는 않다.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위치였다.

만나교회에서 이매까지 이르는 탄천길은 벚꽃도 좋지만 개나리가 더 많았다. 위로는 연분홍, 아래로는 샛노랑이 어울리는 멋진 길이었는데, 몇 년 전에 탄천 보수를 하면서 개나리가 거의 없어져서 지금은 개나리는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야탑동 탄천 (개나리가 부족하다)

야탑동 북쪽으로 탄천을 따라 일부 남아있는 풍광이 아름다운데, 향후에도 탄천 보수 공사를 할 때 이런 점을 감안해서 꽃나무를 조금 많이 남겨놨으면 좋겠다. 야탑동에서 살면서 분당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플레이스였는데, 좀 많이 아쉽다.

야탑 북쪽의 개나리와 벚꽃

두 번째는 생각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꽃도, 풍광도, 사진도 모두 빛이라는 것이다. 지난 목요일과 어제의 사진은 모두 11 ~ 12시에 찍었고, 오늘은 7~9시 사이에 찍은 사진이었다. 이른 아침의 햇볕의 느낌을 다른 시간에 내기가 무척 어렵다.

특히 꽃잎을 투과하는 햇볕은 오전과 오후의 느낌이 아주 다르다. 아마도 꽃잎과 잎새에서 화학적 반응으로 인해 투과율이 달라지고, 햇볕의 각도에 따라 빛의 반사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햇볕 자체도 공기를 투과할 때의 에너지도 다를 것이고..

원인이 무엇이든 아침의 햇볕은 설레고, 희망을 갖게 한다. 사진보다도 실제의 눈부심과 빛의 산란은 가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렇게 자전거를 멈추고 내려서 카메라 폰의 셔터를 누르면 때로는 좋은 느낌을 사진으로 옮길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던 것을 멈추고, 내려서 폰을 다시 꺼내어 조정해서 찍는 것이 불편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내가 원하던 순간을 만날 때도 있다. 바로 벚꽃 눈이 내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화려한 이유는 그 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8배 줌이라 해상도는 낮다

프레임과 노출량을 부지런히 바꾸면서 셔터를 눌러대다 보면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얻을 때도 있고, 못 얻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올해 봄 사진의 버킷 리스트인 벚꽃이 내리는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달리기보다 자전거가 좋은 점은 여러 가지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많다. 단 내가 좋아하는 것 2가는 바로 달리기보다 시원하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좋은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진방 오픈채팅에서 주로 업로드하는 것도 탄천의 꽃과 나무, 그리고 하늘이다. 하늘의 구름과 태양을 담을 수 있는 이유는 자전거로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곳을 다니기 때문이다. 차와 사람이 되도록 적은 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좋다.

내게는 물론 힐링이 되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 이런 사진 찍기는 되도록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매일 하려고 한다. 특히 가족들, 오픈카톡방에 공유를 하려고 한다. 이 습관 자체가 나를 장기적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만들 것이다.

행복의 특징은 외향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의 기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맛난 것을 먹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은국 교수님 다른 논문에서 행복의 비결은 '외향적'인 성격보다는 '즐거움을 찾는' 습관과 성향에서 행복의 비결이 있다고 했다.

내게 즐거움은 운동, 독서, 사진 찍기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아내가 지금처럼 옆에서 맛난 것 먹으러 가자고 글 쓰는 것을 방해하는 순간이다. 이런 것이 내 행복의 순간이다. 이제 글쓰기는 개나 주고, 난 아내가 챙겨주는 음식 사진이나 찍으러 가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캐나다 누님에게 오늘 찍었던 사진을 보냈더니, 그곳은 진짜 오늘 봄에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한다. 삼천리 화려강산 우리나라 좋은 나라.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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