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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아름다움

인생의 의미가 있을까?

3일전부터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독서모임 카톡방에 링크를 올렸더니, 그날 방문자수가 엄청 많았다. 그래봐야 100명 이내이지만... 그중에서 댓글이 올라와서 잠깐 흐뭇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올라왔다. 이런! 이게 매크로구나.

블로그 댓글이 사람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나를 한번쯤은 본 사람들도 댓글이나 좋아요를 많이 남겼으면 좋아했을 것이다. 근데 댓글이 매크로라니, 역시 기대는 잠깐이고, 허무한 상태가 대세다.

회사일도 그렇고, 가정의 관계도, 나 자신의 삶도 힘들고, 노력하고, 잘 풀리고 그래서 잠시나마 행복하지만, 다시 윤회의 챗바퀴처럼 고민과 갈등으로 다시 원점 회귀하는 것 같다. 나사처럼 발전하는 순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생각은 자주 든다. 


요즘 읽고 있는 유시민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읽기 편하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는 유시민 작가는 나처럼 상신의 지평을 좀 더 넓히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미있게 책을 썼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번 디지털화폐(코인)에 관련된 토론에서도 그렇지만, 자기 표현력이 무척 훌륭하기에 부족한 논리나 이론도 무척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마치 알면서도 속는 것 처럼 그의 말에 빠져든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마음이 끌렸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정보를 담은 문장들이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뇌세포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태양이 별의 생애를 마칠 때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모든 천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 전체가 종말을 맞는다.’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작가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을 최고의 과학자라고 한다. 인류사를 크게 바꾼 획기적인 이론이라고 한다. 그것으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파생적 과학발견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뭐 나도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이 간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그런데 인문학의 실패를 과학을 외면하는 것에서 살펴야 한다고 한다. 과거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인간의 감각과 지식으로는 알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이에 대한 답을 인문학에서 제시했다. 정답이든 아니든 검증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검증이 가능한 것들이 많아졌다. 이점을 기초로 다시 인문학적 질문과 사유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인문학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주어진 인생, 던져진 인생에 의미가 없기에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다시금 다가온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신은 죽었고, 우리는 던져진 존재이다' 라는 말은 내 힘이 빠지게 만든다. 

책을 읽고, 운동하면서 몸을 단련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되새기는 행위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그 행위자체에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금방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의미없는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과연 좋은 것일까? 책에서는 생존방법을 구상하는 뇌의 부작용(?)일수도 있다고 한다.

생존과 번성에 대해 도움을 주는 우수한 사고능력의 부작용으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기능을 탑재했다고..

반복되는 의미없는 일상에서, 죽지도 못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잠깐 느껴본 요즘이다. (물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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