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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영화 많이 보면 좋을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아나다 도요시

어제 OCN에서 맷 데이먼 주연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서 4~5번을 봤지만 질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화면과 내용을 모두 알아서인지 일부 지루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 영화의 묘미는 예측 못한 돌발스런 상황이 자주 전개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화면전개에도 긴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과거에 비해 다소 짧은 커트로 이루어져 있어 집중을 높이기는 했다. (물론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실제같이 깔끔하지 않은 복잡한 액션이다.) 

최근의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동이 덜하다. 사건 전개나 액션의 준비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마치 강한 감각에 중독된 것처럼 미묘한 흐름과 사전 암시를 즐기지 못한다. 지난 1년 동안 휴대폰과 노트북의 콘텐츠를 보면서 내 상태가 변한 것이다. 

P011
'그러던 어느 날, 빨리 감기로 한 번 시청했던 작품을 다시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처음 보는 작품을 빠른 속도로 보았으니, 그 묘미를 절반도 맛보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 3~4개월 동안 유튜브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100편 이상 보았던 것 같다. 주로 15~30분짜리 요약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유튜브 영상은 1.25 ~ 1.5 배속으로 보았다. 그러면 약 10~15분 영상이 된다. 강연은 1.2배속으로 본다.

P013
빨리 감기로 보려는 영상 콘텐츠 중 1위가 대학 강의 (57.8%), 2위가 유튜브 자체 콘텐츠(50.8%), 3위가 드라마 (23.4%), 4위가 애니메이션(22.6%), 5위가 보도. 다큐멘터리(19.5%), 6위가 영화(17.2%)였다.

그나마 영화는 정속으로 시청하지만, 이미 영화는 최소 시간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리고 15분이 넘는 동영상은 지속적인 시청을 위해 초반부 자극도 강하고, 빠른 전개 및 편집이 되어 있는 상태다. 내 선택까지 올 때에는 이미 상당 수준의 편집력이 반영되어 있다.

P025
TV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제1회.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가 눈 속을 달리면서 “숨이 차다, 얼어있던 공기 때문에 폐가 아프다”라고 말한다.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절벽에서 낙하하고는 “눈 덕분에 살았군”이라고 한다.

P206
아무도 없는 방에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채 마시다 만 위스키 잔이 있다면 그것은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이 방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을 나타낸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왔는데도 “다녀왔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짧은 시간으로 편집한 단축 영화를 보고 전체적인 이해가 되는 것은 유튜브의 친절한(?) 자막과 해설이 들어있고, 영화 자체로도 그런 성향이 많다고 한다. 주말 예능 프로의 경우 (일본은 더욱 심하지만) 화면 1/4 정도가 자막인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에 내용도 알고, 재미도 느낄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것은 다음날 대화에(특히 온라인 단톡방)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화의 휘발성이 강해서 제때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 어렵다. 

P044
’ 작품 전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패스트무비를 이길 것은 없다. 어째서 그렇게 하면서까지 내용을 빠르게 알고 싶은 걸까? 그야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고, 결말까지 알았다는 만족감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P051
”소위 정보통, 정보 강자로서의 우월감을 느끼려는 게 아닐까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봤다는 사실만으로 비판할 자격이 생기니까.”

P054
”영화관은 작품을 볼 때마다 돈을 지불하니까 빨리 감기를 하면 아까워요.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월정액 요금을 내니까 크게 상관없죠”

평소에도 매사 자극에 중독되기 쉬운(특히 동영상) 나는 넷플릭스도 신청하지 않았다. 내 성향으로는 밤새워 정주행 하기 쉽다는 것이다. 나름의 방어책이었는데, 요즘은 유튜브 쇼츠나, 페이스북 혹은 인스타의 릴스를 더욱 많이 보고 있다.

이런 1분 이내의 동영상은 가독성(?)과 중독성이 더욱 강해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30분 ~ 1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잠자기 직전에 침대에 누워 잠깐 보다가 이내 잠잘 시간을 1~2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다음날 컨디션은 엉망이 되고..

P051
예술 - 감상 - 감상 모드
오락 - 소비 - 정보 수집 모드

우리는 쾌락적인 소비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새로운 자극과 플랫폼은 새로운 정보의 유통 채널로 유혹하면서 우리에게 시간과 관심의 소비를 흡입하고 있다. 기존(남들)과는 다르고 쉽고, 빠르게 우리를 정보와 혜택을 준다고 유혹한다. 

P061
”시나리오의 핵심은 완급 조절이에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번갈아 나오는 거죠. 때로는 어떤 사람이 많은 말을 들은 후 아무런 반응 없이 잠자코 있게 만들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왜 가만히 있는 거지?’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해요. 그렇게 시나리오에 훅(hook)을 늘 준비해서 흐름을 만들고 관객을 끌어가는 거예요.”

그러나 영화를 비롯한 작품들은 작가가 의도에 따라 작품의 흐름과 관심의 고조를 점차 맛봐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고 작품을 제일 맛나게 즐기는 방법이다. 상에 반찬이 가득 담긴 전주 한정식보다는 프랑스 코스요리가 작가의 바람인 것이다.   

근데 요즘은 소비자 최고주의 시대라서, 독자(시청자)의 취향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전주 한정식을 차려놓고 먹고 싶은 요리만을 골라서 먹으라는 시대가 어울린다. 물론 나도 내 취향을 선택 가능한 한정식이 좋지만, 주방장이 의도한 미각의 흐름은 아니다.

고객우선주의 (시청자는 무조건 옳다)는 흐름인지,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의 식자층이나 마니아들만 보는 콘텐츠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메인 요리를 깔아놓고, 틈틈이 마니아를 위한 특별 반찬들이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하면 될까?  

P075
”인기 작가일수록 설명이 부족하다는 둥 개연성이 없다는 둥 날카로운 지적을 받거나 두들겨 맞는 일이 많아요. 그러면 다음 작품에서는 점점 설명을 추가합니다. 그게 영상이 되면 당연히 설명식 대사도 많아지죠.”

P086
”오픈 월드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광대한 세계관을 준비해 두는 거죠. 좋아하는 곳을 철저하게 파려고 생각하면 팔 수 있고, 파지 않아도 게임은 즐길 수 있도록요. 어떤 눈높이로 그 세계를 체험할지는 플레이어의 자유고요.”

참을성 없고 빠른 결과를 원하는 요즘 MZ 세대들을 비판하는 말들은 많이 있지만, 시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도 쇼츠와 릴스에 빠져있다. 단톡방에서 같은 흐름을 타기 위해 짧은 유튜브 영화를 본다. 하물며 요즘 세대들은 얼마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쳐야 하는지 상상이 안된다. 

P100
Z세대의 특징 SNS를 잘 활용한다
돈을 많이 쓰는 데는 소극적이다.
물질 소비보다 경험 소비를 중시한다.
학교나 회사와의 관계보다 친구 등 개인 간의 관계를 중시한다.
기업이 계획한 트렌드나 브랜드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이 추천하는’ 것을 우선한다.
안정, 현상 유지를 지향하며 출세욕이 적다.
사회공헌을 지향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한다.

P110
”그들은 빠른 정답만 원한다”라고 젊은이들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누구든 상처받기를 꺼린다. 창피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P117
”밀레니얼 세대가 ‘체험하지 못한 것’에 가치를 둔다면 Z세대는 ‘체험을 따라가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앞날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P118
나이 많은 선배가 배려하는 뜻에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일단은 해보라”라고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괴롭힘’에 가깝게 느껴진다.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받으면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처음부터 정답을 알려주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P135
”현대인은 시간이 없어요.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30분이 있어도 그 30분 안에 확실히 만족감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죠.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 게임은 시간과 돈만 있으면 확실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터러시' 취약성은 커져가고 있다. 젊은 세대와 꼰대 세대 공통의 현상이다.  매사에 인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시대의 흐름인 반짝이는 소비의 흐름 속에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세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균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187 빨리 감기, 건너뛰기 습관의 기저
1)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2)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
3)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라는 세 가지 이유

1)의 배경 : 영상 공급 미디어의 다양화와 증가
2)의 배경 : SNS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세대의 특징
3)의 배경 :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는 흐름이 있었다.

P196

”옛날에 레코드 같은 건 진짜 음악 축에 끼지 못한다며 쌍심지를 켜던 사람이 있었대”
”옛날에는 빨리 감기에 대해 일일이 쌍심지를 켜는 사람이 있었대”

뼈 없는 닭발과 뼈 있는 닭발은 분명 차이가 있다. 순살 치킨과 통닭은 전혀 같은 맛이 아니다. 뼈가 있는  육질이 더욱 맛나게 느끼게 하고, 뼈를 발라내는 과정이 특유의 즐거움을 준다. 오늘 저녁은 또봉이 옛날 통닭을 먹고 싶지만, BBQ 순살을 좋아하는 막내딸 취향으로 안될 것 같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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