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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한정원의 <시와 산책>

10월 분당 성장판 발제 모임 주제도서다. 책의 뒤편에 보니 열명의(+5명) 작가들이 2개의 단어들을 이어가며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시도겠지만, 나 같은 범인이 감히 넘보기 힘든 천재들의 글쓰기 재능 플렉스로 보인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무척 생소했다. 평소에 예술이라는 것과 담을 쌓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서 '시'라는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첫 부분은 많이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선 죽음이요
이 세계의 슬픔이다.
이 모든 것들이, 죽기에,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이 온 우주보다 조금 더 크다. - p012
눈 속에서 귀 기울이는 자, 
그 자신 무(無)가 되어 바라본다.
거기 없는 무(無), 거기 있는 무(無)를. -  p019

한글로 쓰여 있으니, 읽을 수는 있고, 각 단어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문장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문해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내 마음이 굳게 닫혀있던가, 아니면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과의 대화 같았다.

이해도 공감도 못하면서, 그래도 인내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외국어를 배워가듯 조금씩 이해하는 글들이 보였다. 시라는 것은 어둠 속에 용감하게 뛰어들고, 예민하게 느껴야 한다고 한다. 

시어는 말 그대로 돌멩이, 가시, 구름 같은 단어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에 잠겨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둠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야 한다.
사람은 매일 오늘을 잃고, 영원은 얻지 못한다. 그 상실을 나만의 시어가 달래줄 것이다. 무언가를 희망할 용기가, 단 하루 솟아오르는 도시처럼 융기할 것이다. - p073

실용적인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느끼는 것이라는데, 평소에도 생각하기 싫어하고, 조급한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시라는 것은 존재 그 자체로 빛난다고 한다.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 아치볼드 매클리시, <시학> - p026
그러나 아무리 쓸모도 정처도 없이 걷는다 해도, 산책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길은 계속 이어지더라도, 그만 멈추고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일이나 사랑이나 꿈을 두고 그런 지점을 느끼듯이.
결심하는 자리에 돌아갈 집이 요술처럼 나타나지는 않으므로, 다시 왔던 만큼을 다 걸어야 한다. 산책의 마지막 기쁨은 돌아가는 길을 얼마나 순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느냐에 달려 있다. -p155

우리의 삶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산책이 아닌 걷기 운동을 하고, 심지어 나 같은 경우는 그 효과를 더 누리기 위해 뛰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는 어떤가?

효율만을 위해 달려온 나날들은 부메랑이 되어 아이들의 반항과 아내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따로 각자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간에 보듬고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반백이 넘어 이제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성취가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나는 11월의 숲에서 이런 장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아주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모르고 살던 잎과 땅이 만난다. 잎은 땅에게 공중에서 사는 일의 위태로움과 새가 주는 떨림과 가지에서 떨어져 나오는 아픔에 대해 말해준다. 땅은 잎에게 짐승과 인간의 발밑과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피에 대해 말해준다. 소곤소곤한 이야기가 낮과 밤을 이을 동안, 잎은 썩어서 형태를 잃고 땅은 잎을 안고 기다린다. 마침내 하나가 될 때까지. - p039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를 위해 정진하기도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사하고, 미안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장 쉬운 예로는 가족과의 대화이고, 아침, 점심때 접하는 산과 개천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그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천천히 변하고 있고,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한다. 계절의 변화는 패션에 예민한 사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빠르게 자연의 동물과 식물들은 준비하고 있다는 걸 이젠 나도 알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가족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기쁨과 슬픔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내가 접촉하고자 한다면 알 수 있다. 처음은 익숙하지 않아 잘 모를 수 있어도, 결국 금방 알게 된다.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돌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봄은 존재했다. 흙이 부풀어 올랐고 나무줄기의 색이 바뀌었다. 벌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의 소요가 길어졌다. 동그란 물방울을 입안에서 굴리듯 지저귀는 새가 숲에 새로 왔다. 봄은 단서들을 한껏 뿌리고 다녔건만, 도시의 건물 안에서는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 p147

그런데 작가는 어떤 면에서 이렇게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것이 그렇게 마음을 건드리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시어를 발견해나갈까? '감은 눈꺼풀처럼 순하게'라는 말은 나로서는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네 귀를 조약돌로 단정히 누른 백지' 같은 말도 마찬가지로 읽기만 해도 눈에 보이는 언어들이다.

불이 꺼진 창도, 그 창 너머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감은 눈꺼풀처럼 순하게만 보였다. - p047
한 사람을 오래 응시할 수 있으려면 마음이 단출하고도 단단해야 할 거예요. 그때 당신의 모습은 네 귀를 조약돌로 단정히 누른 백지 같았어요. 이후 저는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 - p167

작가의 상처가 중간중간 배어 나오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결국 작가는 다시 살아가겠다고 한다. 허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덧없는 인생살이에서 시를 통해, 자기답게 아름답게 살아가겠다고 한다.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 밤하늘처럼'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은 아름답게 걷고자 합니다. - p172

작가와 나는 참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작가처럼 병사한 아기 길냥이들을 미리 보살피지 못했다고 울기는커녕, 집에 고양이가 3마리나 있지만 반려묘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애완묘 정도로 생각 중이다.

나는 저렇게 예민하지도 못하고, 사물과 관계에 대해 깊이 반추하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 바꿀 생각도 없다. 그리고 작가처럼 아름답게 살 생각도 없다. 난 그저 제대로 살고 싶다. 내가 살아온, 살아갈 삶의 의미를 갖고 싶다.

아직 후회한다면, 그 또한 미련한 미련이겠지요. 그래도 저는 후회보다 더 큰 말이 있다면 그걸 쓸 거예요. 어떤 후회는 영영 삭지 않아요. 자책은 사랑보다 수명이 길고요.
하지만 후회를 간직하고도 나아가야 한다는 걸 지금은 근근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읽고 나서도, 실패하고 나서도, 다시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는 걸요. - p171

하지만 결국 작가나 나나 모두 죽는다. 그것은 공통의 숙명이다. 내가 삶의 의미를 갖더라도, 행복하더라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다가온 답답함과 어두움은 아래의 문장으로 다시 한번 방점을 찍었다.

남쪽 도시에 가면 들르는 성직자 묘지가 있다. 입구 기둥 왼편에  HODIE MIHI 오른편에 CRAS TIBI라고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죽음이 모든 존재를 공평하게 응시하고 있음을 간명히 전하는 말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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