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장하는 독서

어른의 문답법 - 피터 버고지언

평소에 사람들을 만날 때는 외향적인 편이라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불편한 관계를 경험한 적은 너무나도 많다. 대다수의 경우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편이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인다.

문제는 지속적 관계가 형성되는 사람들을 대할 때 관계 개선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대방도 나도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서 두 사람 모두의 관계망에 속한 사람들은 불편할 것이고, 상대방과 더 가까운 사람은 내게 나쁜 선입관을 가지게 된다. (둔한 나도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심지어는 친한 사람들 간에도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오해가 생기기 쉽다. 내 경우는 처가 형님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아이들과 젠더이슈와 세대 이슈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친한 친구와 모임에서 종교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모임에서 정치, 종교, 세대, 젠더 이슈는 이야기 하지말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리 삶에서 돈, 짝쿵, 자식, 직장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매일 날씨와 강아지 이야기만 할 수도 없다. 결국 자신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정치/종교/세대/젠더 모두 자신의 입장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

이 책은 분당 성장판 11월 발제 도서다. 좀 더 성숙하고 바람직한 대화를 위한 책이다. 성장판 추천 도서답게(?) 읽는 재미는 조금 덜하다. 하지만 성장판 도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읽어보면 항상 여운이 강하게 남는 편이라서 정독을 했다. (물론 이번 달 발제 순번이기도 하다)

목차 순서대로 기본-초급-중급-상급-전문가-달인 순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방법론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이야기 풀어나가듯 쓴 것이 아니고 목차에 세부 목차까지 있고 번호순으로 요약을 하였기에 요약집 같은 느낌이라 재미는 좀 덜했다.



그런데 첫째 장 기본 편에서 일단 막혔다.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자기비판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대화가 많이 막힌 것은, 역시나 대화의 기본이 안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의 목적을 상실하지 않는 것, 방법은 라포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제일 기본은 ‘말은 줄이고 더 많이 듣는다’였다.
(* 라포르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 용어)

기본 : 품격있는 대화의 일곱가지 원리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가로채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것이다’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굳이 반론하지 않고 불편하고 화가 날 때는 ‘좀 답답한 느낌이 드네요. 좀 더 자세한 의도를 알려주세요’라고 청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한다. 내 생각도 이 정도면 거의 모든 대화를 분쟁 없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초급 :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아홉가지


‘본보기를 보이는 것’과 ‘질문하기’는 정말 중요한 용기인 것 같다.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법 같다. 상대방이 회피하는 질문에 대해 자신은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 교정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통제받는 느낌 없이 자신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 교정 질문 : ‘어떻게’나 ‘무엇’이 들어가는 질문으로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

여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견해를 존중하며, 그 말에서 배울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된다면 정말 대화의 달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특정 기술보다도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순서대로 해야 한다니 정말 어렵다.

P073
미국 남부 지방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안다고 알아주랴, 관심 줘야 관심받지” (중략)
우리가 아무리 아는 게 많더라도, 대화 주제 또는 대화 상대에게 관심이 많아야 비로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두 특성 다 장점은 있지만, 상대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사하는 데는 두 가지 해석 모두 의미가 있지만, 도덕적 견해가 엇갈리는 대화에서는 의미가 없다.

P074
앞서 본 속담을 이렇게 해석해보자. “나와 도덕적 견해가 다른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특히 상대가 관심을 둔 가치에 나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40년 친구들 모임, 25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된 구절도 있었다. 역시 책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도 실천이 어려울 뿐이지만, 평소 명심한다면 늙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P111
친구라고 생각이 같을 필요는 없다.
좋은 인간관계야말로 건강과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논쟁에서 이긴다고 그만큼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입을 모아 꼽는 것도 좋은 인간관계다. 건강한 인간관계의 기틀은 자기가 옳음을 인정받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뜻깊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요소는 신뢰성, 친근감, 공감, 즐거운 대화, 배려와 호의, 진정성, 공통의 관심사,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등이다. 이는 대부분 정치적, 종교적 견해와는 관련이 거의 없다.

1)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게 놔둔다.
2) 이해가 잘 안 되면 내가 이해를 못 한 탓으로 돌린다.
3) 진심으로 부딪혀본다.
4) “혼자 옳으려면 혼자 살라 (You can be right or you can be married)”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어색한 편이다. 나로서는 기독교 신자들의 생각이 전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원리가 지배(?)한다고 하는 현대에서 2~3천 년 전의 불합리한 사고방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독교 신자이 비중은 매우 높지만, 최근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위축되는 추세인 것 같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갈등이 표면화되지는 않는 것 같다. 토론을 시작하면 격렬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대화를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이야기도 가능할 듯싶다.

P149
창조론이 거기에 딱 부합하는 예다. 진화의 증거는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압도적이지만, 미국인의 34퍼센트는 진화론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리고 단 33퍼센트만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오로지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진화했다는 믿음을 표명한다. (중략)
도덕적 사고와 사회적 사고가 이성적 사고를 압도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도덕적, 사회적 믿음이나 정체성 차원의 믿음을 바꾸려고 할 때, 근거나 사실을 제시하는 행동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믿음에 반하는 근거를 제시받으면 믿음을 오히려 더 확신하게 되는, 역화 효과가 있음을 잊지 말자. 역화 효과가 일어나면 상대방이 기존 믿음을 한층 더 고수하면서 대화가 교착되고, 결국 노력은 헛수고가 되기 쉽다. 역화 효과를 유발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사실’이다. 근거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심리적, 사회적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아내와 운전 중에 심한 언쟁을 하였다. 원인은 바로 전 저녁식사 때 내가 언성을 높이면서 아내에게 퍼부었기 때문인데, 결론은 아내나 나나 감정은 고조되고, 감정의 브레이크를 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을 또 하나 배웠다. 이젠 아내와 조금은 덜 다툴 수 있을지도 모른다.

P179 ~ 화에 관한 네 가지 사실
1) 화는 판단력을 흐리고 대화를 엇나가게 한다.
2) 화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이 있다.
3) 화를 비롯한 모든 감정에는 이른바 ‘불응기’가 뒤따른다. : 블응기에는 신경계의 작용과 일시적 감정 편향으로 인해 정보처리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4) 화의 원리를 알면 피할 수 있다.

P180 ~181 대화중 하지 말아야 할 행동
1) 화를 화로 받지 않는다. :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면 모욕으로 응수하지 않는다. 그러면 상황은 악화할 뿐임을 기억한다.
2) 탓하지 않는다. “난 잘 얘기해보자는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3) 상대방의 의도나 동기 또는 화난 원인을 나쁜 쪽으로 짐작하지 않는다. : 화난 이유는 본인이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4) 안전에 위험을 느끼면 대화를 굳이 이어가지 않는다.

P182~183 대화중 해야 할 행동
1) 관찰한다 : 나 또는 상대방에게서 분노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지 살핀다.
2) 침묵한다 : 유리는 위기가 격앙되었을 때 잠시 침묵하는 것은 “감정이 행동으로 직행하는 연결고리를 끊기”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장 효과가 있는 방법은 “속도 늦추기”라고 강조한다.
3) 경청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화낼 때 모든 일을 멈추고 가만히 듣는 행동이 최선이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는 점에 집중한다.
4) 사과한다. : 내가  상대방의 분노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다. “미안하다”라고 말하자.
5) 중단한다. : 필요할 때는 대화를 끝내고 자리를 뜬다.

P184 ~ 185 대화 전에 할 일
1). 분노를 일찍 알아차리는 법을 익혀둔다. : 화가 일어나는 첫 느낌을 포착하는 연습을 한다.
2) 불응기를 이해한다. : 분노 감지 능력에 아울러 불응기에 대한 인식을 갖추자.
3) 나의 분노 촉발을 미리 알아둔다. : 내 감정을 자극하기 쉬운 단어가 어떤 게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런 단어를 피해 대화할 방법을 찾아보자


추가로 두 가지 더 배웠다. 하나는 레퍼포트(팃포텟 전략 창시자) 법칙인데,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순서이다. 이걸 시행할 수 있다면 답답할 수는 있어도 잘못될 가능성은 정말 낮다고 생각한다.

P200 감정 분출 돕기
대화를 심화 및 연장하는 시도를 모두 해보았고 친구가 더 할 말이 없는 게 확실하면, 곧바로 레퍼포트 규칙 1~3번을 실행한다. 먼저 친구가 한 말을 정리해 표현하고, 맞는지 확인한다(1번 규칙). 그리고 듣는다. 정확히 표현됐다고 하면 내가 동의하는 점 또는 공감하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2번 규칙). 마지막으로, 내가 배운 점을 언급한다. (3번 규칙) 4번 규칙은 이행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반박이나 비판은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감정 분출 기회를 주고 나서 반박이나 비판을 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그리고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서 언급된 도덕적 기반에 대해 다시 한번 복습을 했다. 난 역시 기억력은 영 꽝이지만, 매번 새롭게 배우는 기분이 들어 한편으로는 좋다.

P249 도덕적 기반
. 배려 / 위해 (진보) (보수 x)
. 공정 / 부정 (진보)
. 충성 / 배신 (보수)
. 권위 / 전복 (보수)
. 정결 / 오염 (보수)
. 자유 / 억압 (진보)

보수주의자는 여섯 개의 도덕적 기반에 모두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충성, 권위, 정결에 특히 이끌리고 배려에는 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진보주의자는 배려와 공정을 가장 중시하고 그다음으로 자유를 중시하며, 나머지 세 기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더 발전된 대화의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내가 노련한 협상을 할 일도 별로 없고, 인질 협상도 할 필요도 없고, 골수 이념가를 설득할 생각도 없다. 대화가 어려우면 피하면 된다. 대화의 기본/초급/중급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몇 가지 배운 것은 실천해봐야겠다. 정말 내게 필요한 유용한 것들을 배웠다.

P257
무식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배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불가능한 대화는 없다.

'성장하는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쉽게 읽을 수 있을까?  (0) 2021.12.05
어른의 문답법 - 피터 버고지언  (0) 2021.11.28
한정원의 <시와 산책>  (2) 2021.10.18
운동과 뇌건강  (0) 2021.10.17
싱크 어게인 - 애덤 그랜트  (0) 20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