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운동

튼튼한 몸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금주 화요일 오후 반차 휴가를 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날씨가 화창하였다. 전날 아침 출근길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가 진동을 하여 페달을 밟는 내내 즐거운 길이었다. 화요일 오후도 마찬가지로 삼성역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은 절반정도 반팔을 입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유유히 페달을 밟으며 탄천 자전거 도로를 따라 멋진 경치를 보면서집으로 왔다.

여름같은 날씨지만 탄천에는 봄꽃이 활짝 피었다.

평화롭고 따스한 귀가길과 다르게 내 마음은 조금 어두웠다. 오후에 병원에 무릎 수술 관련 진찰 및 상담이 잡혀있었다. 6개월 전 MRI 촬영도 하고, 그때부터 연골주사를 맞았다. 6개월 단위로 연골주사를 맞아야 하기에 요번에도 주사를 맞는 동시에 아예 관절경 수술을 할까 고민을 했던 것이다. 수술보다는 물리치료와 운동요법을 선호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려도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으로 좀 더 호전이 될까 기대를 했었는데,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젊은 의사선생님이 약간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신 것도 있고, 내가 정확하게 질문도 못하고 이해도도 떨어졌기에 그냥 주사만 맞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재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부작용이 있더라도 수술을 하려고 어느 정도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증상의 경과 및 수술 후 부작용 등의 문의사항을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서 준비했다. 그리고 카카오 오픈채팅방에서 수술이나 진찰하실 의사도 조언 받아서 예약을 하고 병원을 재방문한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경험이 아주 많은 듯 들어가자마자 이전의 기록을 보고, 무릎을 만지면서 관절의 소리와 느낌을 관찰하더니 묻기도 전에 대답을 해주셨다. '퇴행성 관절염 상태가 수술적인 간단한 조치를 할만한 초기는 아닙니다. 이미 연골이 많이 없어져서 수술로 정리를 한다고 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조심하면서 아껴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잘 쓰신다면 70대까지 쓰시고, 그즈음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X-RAY로 보기엔 크게 문제 없어 보이는데, MRI 영상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좀 다르다.

혼란스러웠고, 많이 실망했다. 수술을 하고 몇달간의 재활을 각오하고 수술을 하겠다는 내 의견을 밝히려 했는데 질문도 듣기 전에 의사가 소견을 단호하게 말하니 더 이상 가타부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연골주사를 맞을 때 다시 한번 질문을 했었다. "혹시 운동을 통해 연골 손상이 회복될 수도 있나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재생 안됩니다." 나로서는 좀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입사초기에 농구를 엄청 많이 했고, 30 중반부터는 마라톤을 해온 터라서 하체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이 아무 소용없고, 오히려 그런 과격한 활동이 문제였던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왜 나에게'와 '어떻게 무릎이'라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소설가 김언수의 억울한 마음과 같았다. 문제는 자전거 잃어버린 것보다는 훨씬 더 분노와 좌절감이 컸다는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고, 올해 건강검진 결과도 하체 근육은 평균치를 넘어서는 근육량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도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냥 허무하게 점점 나빠진다고 하니 허탈감마저 들었다.

요 근래 3~4년간 체중 증가로 잘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풀코스 마라톤도 참석해서 완주도 하고 있었고, 내심 60세 이전에 철인경기를 완주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평상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5~7시간 정도의 크로스컨트리이었고, 자전거로 전국 종주를 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무릎이 이런 상태라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은 그저 시도만으로도 무릎이 더욱 나빠지고 수술 날짜를 앞당기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실제 내가 수술까지 받으려고 한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통증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뻑뻑해진 다리를 느끼고, 침대에서 일어날때 찌릿하는 경우가 많으며, 회사 의자에서 장기간 앉아있으면 종아리가 굵어지는 듯 뻣뻣해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저린 것처럼 걷기가 힘들었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 똑바로 힘주기가 어렵고, 평지를 걸어 다닐 때도 빨리 다닐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지속되니 마치 마음과는 달리 몸이 아픈 노인처럼 된 것 같아서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의 성장이나 운동능력의 향상은 과부하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몸의 부담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달리기를 할 때 이런 원리를 통해 훈련을 했었고 지금까지도 이런 점진적인 과부하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과부하를 걸기만 하면 회복과정에서 다리가 너무 아파 오히려 과부하 훈련을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수술을 통해 이런 번거로움을 없애고 싶었던 것이다.

이전에 진찰한 의사의 소견으로는 내 무릎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척인 것이 복합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월형 연골이 아니고 판형으로 생겨서 연골 손상이 쉽고, 내가 무릎을 과하게 사용한 것이 복합된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연골이 상하지 않은 사람이 아주 많다고 했다. 일명 재수가 없는 것이니 너무 자책을 하거나 억울해하지 말라는 듯한 말이었다. 위로를 해주는 젊은 의사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고, 사실 그 자체로 맞는 말이지만, 내 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나는 30년을 넘게 먹은 술을 끊으면서도 심리적인 고통이 크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둘 다 가지고 있었고 나는 금주의 좋은 면을 더 많이 느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동을 줄이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어린 시절 운동 후 공부할 때의 느낌과 중년 이후 운동 시 마치 명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은 평생 유지하고 싶고, 그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은데, 운동을 많이 하면 문제가 된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하지만 마라톤만 16년이 넘게 해온 나로서는 나름대로 부상과 재활에 대한 지식이 쌓여있다. 내 몸에 맞는 부상의 감지법과 재활 방법이 있어서 변화도 주고, 응용도 많이 했었다. 이번 것은 좀 중장기 재활이라 맘을 먹고 진행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마라토너는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체의 자생력을 믿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재활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대원칙을 세웠다. 첫째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둘째 꾸준하게 한다. 셋째 점진적으로 양을 늘린다.

실제로 재활의 기간을 장기간으로 설정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르기에 그저 일년뒤 재 관찰한다는 전제를 했다. 몇 개월 만에 회복을 하려 한다면 마음도 조급해지니 무리하기 쉽다. 일 년 동안 그저 반복적인 운동을 해보려 한다. 제일 중요한 하체 근력운동, 그리고 유연성과 즐거움을 주는 자전거 운동, 그리고 몸상태를 체크하는 슬로 조깅이다.

자세를 바로하는 코어근력 운동 몇 가지 (푸쉬업, 아령 들기, 턱걸이, 복근 운동, 스콰트)를 하루 2~3번 반복하고, 조금씩 강도나 반복 횟수를 늘린다. 자출은 매일 하되 속도를 내는 것은 일주일에 2번만 퇴근길에만 한다. 매일 일요일 바닥이 푹신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주 슬로우 조깅을 10바퀴부터 시작해서 매주 10% 증가시킨다. (보폭을 좁게 하고 충격은 주지 않는다. 팔치기도 거의 하지 않고 하체 근육으로만 달린다.) 매일 수시로 관절 부위를 스트레칭으로 운동범위를 넓혀준다.

내가 예상하는 것은 이렇게 진행하면 관절부위의 근육, 인대를 포함해서 강력한 지지대를 만들어서 연골의 부족함을 메우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안되면 할 수 없지만 일주일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는 근력 보강 및 스트레칭을 통해서 운동범위를 점차 늘리는 것은 통증관리에도 좋고 부작용 관련 이야기도 없었다. 어차피 망가질 무릎이어서 좀 더 오랫동안 통증 없이 쓰는 것이 최고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에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내년 이맘때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여 풀코스 마라톤을 뛸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인생사는 뭐 변수가 있는 것이 나름 재미이니 기대하고 사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후에는 다시 철인이나 울트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올 한 해는 그저 반복적인 운동과 스트레칭이 주어진 숙제이자 일상이 될 것이다. 꾸준히 하는 것은 내 장점이다. 잘될 것이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복리의 마법을 예로 보이면서 매일 1% 개선이 되면 일 년 뒤에는 38배로 증가한다는데, 운동에서 매일 1% 개선은 어려울 것이지만 주 단위 거리 늘리는 원칙도 10% 인 만큼, 내가 재활훈련 정도인 주 단위 3~5% 정도 늘려 나간다면 지금 1키로 조깅에서 1년 뒤에는 20키로 마라톤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김치국을 조금 많이 마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