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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설레임

결혼기념 가족여행과 독서 '몰입'

5월 3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 2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리거나 바쁠 때는 케이크와 맛난 식사로 서로를 축하(?)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아이들도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게 피차 편하기도 하다) 혼자 둔다고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다. 어차피 같이 있어도 부모 마음대로는 안된다.  

한 달 전부터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혼자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 통보를 했더니, 아내가 부랴부랴 문경에 호텔을 잡았다. 동해안이나 남도지역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 경북 문경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태생지이기도 하다. 나도 아내도 편안한 지역이다. 큰아이는 시험 준비로 같이 못 가고, 둘째는 같이 갔다. (결혼기념일을 몰라서 따라나선 것이다. 그런데 아내도 기념일을 몰랐다고...)

첫날부터 문경새재 과거길을 끝까지 걷고 나서 작은딸은 근육통(?)으로 고생을 했다. 덕분에 한밤 중간에 일어나 임시조치를 했지만, 내 이른 아침의 자유시간과 아내와의 단둘 만의 시간은 늘어났다. 혼자만의 시간, 아내와의 다정한 시간, 가족의 즐거운 시간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문경새재 제3관문 : 둘째딸이 힘들게 올라왔다  

 

다 내려왔을때 지쳐서 억지로 웃고 있는 둘째딸

둘째 날 비가 와서 운동도 못하고, 혼자 나가서 책을 보다가 아내와 함께 네이버 블로그에서 추천한 문경의 대승사를 방문했다. 이른 아침이고, 새벽에 비가 와서인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찰 구경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여행테마 중 하나이다. 대승사를 돌아보고 난후 아내는 사찰 뒷편의 산속 임도를 좀 더 걷다가 내려왔다. 

문경시 대승사 : 조용하고 참 멋진 절이다.

이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하여, 아침에 단둘이 사찰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오후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숙성 쇠고기도 먹고, 지역 명물이라는 동굴카페도 갔다. 다시 저녁에도 둘이 사극 촬영 세트장도 산책 다녀왔다. 이젠 우리 부부가 무엇을 하든 편안하다. 해외여행 체험을 하든, 그저 동네를 걷다가 편의점에서 사이다 한 병을 나눠 마셔도 안정된 포근함이 있다.

결혼기념일의 아침, 점심, 저녁의 기록들 

이번 여행 중 더 좋았던 점은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체력의 차이인지 아내와 둘째는 일어나는 시간이 나보다 느리다. 나는 초저녁에 귀마개, 안대로 무장하고 잠을 자지만, 아내는 예민해서 잠들지 못하다가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난다. 둘째 딸은 늦게까지 핸드폰을 보다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점심 다되어 일어난다. 그 시간이 내게는 기회다.

새벽 운동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아침 일찍 영업하는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으면 된다. 저녁식사 이후에도 같이 어울리다가 쉴 시간이 되면, 혼자 조용히 나와서 카페에 있다가 들어가도 좋았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여행기간 내내 무언가 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놓으니, 여유가 더 생겨 좋았다.

마지막 날은 문경새재 1관문~3관문 달리기를 했는데, 언덕훈련으로 아주 좋았다. 길이 흙으로 되어있어 충격을 완화해주었고, 끝까지 완만한 경사는 오르막 훈련, 내리막 훈련 모두 좋았다. 특히 사람이 전혀없고, 상쾌한 공기, 새소리, 물소리, 상쾌한 꽃내음, 깊은 숲의 냄새 모든 것이 좋았다. 몇번이고 달려 오르고 싶은 임도길이다.

이번 여행에 가져간 책은 황농문 교수의 '몰입, 두 번째 이야기'였다. 그전에 '몰입' 1권을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중 하나인 고2 때의 일상을 좀 더 상세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매일 30분 정도의 운동, 긴장이 풀린 몰입,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 자신감) 

우리에게 유입되는 감각과 내재된 무의식 중에 '자극이 강하거나, 반복되는 신호는 무의식을 뛰어넘어 의식의 세계로 넘어온다'고 한다. 다른 신호와의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이기지 않으면 생각은 자주 바뀌고, 이것은 우리가 몰입하는 것과 반대로 여러가지 산만한 생각으로 떠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몰입하려면, 자꾸 그 몰입하려는 대상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쉴 때, 자기 전, 밥 먹을 때 계속 생각하면, 우리의 뇌신경회로는 저절로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되며, 그 자극은 강해지고 몰입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 좋은 것은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수면이라고 한다. 렘수면 시 새로운 연결이 많이 되는데 이 시간은 낮잠도 포함 잠깐 쉬는 것과 규칙적으로 충분한 수면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황농문 교수는 '슬로우 싱킹'을 통해 문제 해결을 많이 했다고 한다. 며칠, 혹은 몇 주간 집중적인 생각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발상의 전환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종교의 참선이나 명상 등과도 같은 원리라고 한다. 또한 위대한 기업가들의 집중하는 모습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면 대단한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황 교수님은 엔트로피 법칙을 기초로 각종 문제들은 살펴보고, 논리적인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정답이 반드시 있고, 지금의 내가 아직 무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지, 반드시 풀린다'는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심리적인 바탕을 유지하여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몰입을 하는 것은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인데,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부분적인 엔트로피 증가에 역행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순도가 높은 원재료를 추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밀도의 기술력도 부분적 엔트로피의 역행 과정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엔트로피의 증가이고, 이에 반하는 생명활동은 부분적인 엔트로피 역행이다. 산만한 의식의 흐름 대신 집중하는 몰입은 부분적인 엔트로피의 역행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몰입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첫째 구동력이 커야한다. 궁지에 몰린 사업가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대표적인 것이다. 구동력이 크면 우리의 뇌는 자극을 크게 받아서 자나 깨나 해결을 하려고 집중하고, 노력하고 결국 방법도 찾아낸다는 것이다. 우리도 스스로 해내야 하는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회성 목표 다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목표를 되새기면 몸과 마음이 따라간다고 한다. 외부의 자극이 없더라도 반복하면 내적 자극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슬로우 싱킹이다. 몸을 편안하게 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쉴 때, 먹을 때, 잠자기 전에 계속 생각하면 저절로 신경망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몰입하는 흉내를 내면 뇌도 조금씩 그 문제를 해결하게끔 도와준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이 강력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몰입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방해가 없어야 하기에 평소에 주의 동료나 친구, 가족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놔야 한다고 한다. 몰입의 기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고 한다. 

마지막 몰입이 강해지면 행복해지기 쉽다고 한다. 수도자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견이다. 그런데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하다 보면 행복에 대해 둔감해진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느낌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보다는 의미 있게 사는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런 상태로 도달하고 싶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라기보다 무엇인가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이를 보다 더 잘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자 수단이다. 따라서 행복은 추구하기보다 활용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행복을 활용하는 것이다. 단순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보람과 가치가 수반되는 행복을 추구할 때 비로소 행복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P330)

몰입, 두번째 이야기 - 황농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