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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설레임

늦여름! 휴가를 다녀오다

요번 여름에는 늦게 휴가를 다녀왔다. 올해부터 회사에서 휴가기간을 조정할 수 있어 가능했다. 집사람은 초여름이 제일 바쁜 시기라서 매번 휴가 때마다 편안하지 못했다. 수시로 통화를 하고 저녁에 노트북을 꺼내서 긴급 업무를 처리해주곤 했다. 올해는 집사람이 조금이나마 여유 있는 8월 마지막 주로 휴가기간을 잡았다.

큰딸은 학원에서 그리고 기숙방에서 입시 준비 중이라 말하지 않고, 둘째 딸과 셋이서 조용하게 다녀왔다. 둘째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우리 부부도 편안하고 여유 있는 휴가를 보내려고 하였다. 2박 3일 동안 가평의 리조트로 다녀왔다. 출발 전에 집사람이 요번 휴가의 컨셉을 직접 정했고, 가족에게 공지했다. "노터치, 돈허리, 릴~랙스"라는 모토였다.

◈ 워워 릴랙스

보통의 휴가시에는 갈곳, 할 것, 먹을 것을 내가 미리 정하고 그것에 맞춰 계획대로 움직였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었는데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우리 집 여자들과 마찰이 발생하곤 했다. 체력 차이도 있고 생활방식이나 생활 속도의 차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리더십(이라 읽고 생떼라고 이해)으로 설득하고 일정을 진행하였다. 가족들의 단체행동권은 강해졌고 나도 민주적인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게을러져서 계획을 안세운 것이 아니다) 요번 휴가는 집사람이 거의 모든 계획과 준비를 하였다. 식사는 숙소에서 해결하고 공식일정은 수상스키 배우는 것 하나만 있었다. 

보통 우리 가족은 차가 밀리지 않을 새벽 5시에 출발하는데, 요번에는 휴가시즌이 아니라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오전 9시에 아침을 먹고 마트에 가서 먹을 음식을 구매하고, 다시 집에 와서 고양이들 먹을 물과 식사를 많이 챙겨놓고 화장실 모래를 넉넉하게 준비한 후 오후 1시 넘어서 출발했다. 평상 시라면 우리 여행의 하루 일정 중 절반 이상이 끝난 상태인데 오늘은 시작시간이었다. 

엥! 우리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이봐요 할배!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가주시면 식사는 제가 잡아오겠습...

체크인하고 좀 쉬다가 바로 수영장으로 가서 놀았다. 이곳은 사진 찍기 위해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과감한 디자인의 수영복과 화려한 화장 그리고 적극적인 포즈도 많았다. 아내는 나와는 달리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다. 우리의 컨셉에 맞게 저녁 먹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나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세미나룸에서 혼자 책을 읽었다.  

이럴때는 시집 안보내고 평생 같이 살고 싶은데..
우리는 조금 이른 저녁을 고기와 고기랑 고기로 먹고 
저녁을 준비하는 투숙객들

다음날 오전에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아침만 같이 먹고 쉬기로 했다. 나는 책을 들고나갔다. 다행히 2권을 가져왔기에 오늘 읽을 책이 한 권 더 있었다. '무경계' 얇지만 좀 난해한 책이다. 나른해지면서 잠이 몰려왔다. 나중에는 아내가 따라 나왔고 사진을 찍어줬다. 

이 소파(?)는 앉아있으면 점점 누워진다. 독서보다는 휴식에 어울린다.

점심에는 둘째가 꼭 먹고 싶은 매운탕을 배불리 먹고, 미니 당구도 치면서 좀 쉬다가 작은 아이와 내가 수상스키를 배웠다. 나는 줄잡고 타는 것까지 가능해졌는데, 작은 딸은 손의 힘이 없어 자꾸 놓치게 되었다. 좀 아쉬웠는지 다음에 힘을 키워서 다시 오겠다고 한다. 역시 평소 운동을 해야 레저활동도 재미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쏘가리 매운탕과 감자전 맛이 좋았다. 
비록 미니 당구장이지만 투지가 강했다. 나랑 승부에서 비겼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재미있다. 
늦은밤 아내와 단둘이 수영장에서 좋았는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마지막 날 아침에도 한 시간가량 슬로우 조깅을 하고, 리조트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아침 수영을 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서 밖으로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영을 잘 못하지만 이럴 때는 마음껏 잠영, 자유형, 개헤엄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심심하면 옆에 있는 온천 욕조에 들어가 몸을 풀기도 했다. 노터치, 돈워리, 릴랙스 느낌을 맘껏 즐겼다.

워낙 못하는 수영이지만 혼자 하니까 참 좋았다.

◈ 매일 하고 싶은 것은 계속했다. 

휴가 중 개인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나는 새벽시간에는 매일 운동을 했고, 가족들이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더욱 편안하고 뿌듯하게 해 줬다. 매일 한 시간 가량 달리기를 했고, 수영을 한시간 이상 했으며, 휴가기간에 책을 4권이나 읽었다. 각종 모임이나 강연도 참석했고, 거의 모든 식사를 가족과 함께 했다. 

사진 찍기 위해 놀러 간 것처럼 사진을 많이 찍었다. 운동 중에도 찍은 적이 있고, 집 근처 산책 중에도 찍은 적이 있다. 저녁노을을 찍는 내 모습을 보고 그때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상의 아름다움은 찾을 때만 발견할 수 있다.

◈ 평소 못하던 것도 몰아서 했다.

영화를 2편 보았다. 그중 '커런트 워'는 경쟁의 치열함과 현실성에 대해 비교적 잘 표현하였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리 그 자체를 위해 과정이 합리화되고 원칙이 손상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줘서 참 좋았다. 뒤늦게 '엔드게임'을 보았고 오늘 오후에는 '맨 인 블랙'을 아내와 같이 볼 예정이다. 

자동차 정기점검도 받았고, 자전거도 청소와 간단한 정비를 했다. 독서록을 몇 시간에 걸쳐 정리했다. 그리고 사진 강습을 받았다. 향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아내의 창고 정리도 도왔다. 그래서 휴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 아쉬운 것이 있을까?

아쉽게도 처남과 당구는 치지 못했지만 별다른 아쉬움이 없다.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식사를 가족과 하다 보니 2킬로 정도 체중이 늘었다. 3~4일 식사 조절하면 될 것이라서 괜찮다. 산에 올라가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여름 산을 올라봐야 인내심을 키울 수 있는데..

정작 많이 아쉬운 것은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분들을 못 뵌 것이다. 지금 생각나는 분들은 2분 정도 있는데 그분들 연락을 못 드려서 아쉽다. 내가 어려울 때 잘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하고 싶다. 이렇게 즐겁고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의 도움이 조금씩 작용한 덕이다. 나는 좋은 시간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