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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설레임

모꼬지 친구들과 겨울 여행

한동안 고등학교 동창인 모꼬지 친구들을 못 만났다. 몇몇 친구끼리는 아직도 신촌과 홍대 중심의 터전에서 활동하였기에 가끔 만났지만, 회사와 집이 멀리 떨어진 나는 상시 참여가 어려웠다. 40년을 계속 만난 친구들이라 심리적 거리는 없었지만, 자주 얼굴을 보며 술(?)한잔 하고 싶었다.

지난여름 아내는 사업이 바빠서, 같이 휴가를 갈 수가 없었다. 나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겨울이 되어 밀린 하계휴가를 써야 했다. 아내와 짧은 여행 혹은 나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할까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생각났다. 올해 봄에 퇴직한 은석이와 올해 말에 퇴직 예정인 진하가 떠올랐다. 

이 둘과 겨울 캠핑을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진하에게 퇴직 일정이 확정되었는지 문의 후, 여행 일정을 대략적으로 구상했다. 그런데 호걸이도 퇴직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3명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모일 수 있는 날짜를 정해서 나는 휴가 계획을 짰다.

세 명의 친구들은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빨리 높은 직위와 직책으로 올라갔다. 그래서인지 여행 계획과 준비를 할 때도 전혀 답답함이 없고, 중요한 것은 미리미리 준비해줬다.  여행의 묘미답게 여백도 많이 남겨두었다. 가족여행과는 달리 준비하는 것이 내 역할이 없어서 너무도 편안했다.

드디어 출발 당일, 역시 늦게 도착한 사람이 없었다. 내가 1차 모임 장소에 정각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받고 나올 예정인 진하는 이미 차를 대기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몇 킬로 떨어진 만날 곳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정각보다 약간 빨랐지만, 제일 늦은 편이었다.

삼성역에서 차는 출발했고, 여명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곧바로 차 안에서는 대화가 흘러넘쳤다. 내가 친구들과 만났을 때는 정말 말이 많은 편인데, 이 친구들에게는 못 당하겠다. 조직에서 임원인 자신의 역할과 의견을 관철하려면 발표와 토론에 능한 것이 유리해서인지, 정말 막힘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경청과 조언도 힘을 주었다.

50대 중반답게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빵을 식사로 안 한다는 것과 식사는 탕이나 국이 들어간 식사를 절대 선호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기본적인 원칙이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화장실을 미리 알아보고 다녔다. 타이트한 시간관리와 긴장의 연속의 생활을 한 탓일까? 아니면 잦은 회식과 부족한 수면 탓일까? 과민성 대장증상이 체질이 된 친구들이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경기 광주 휴게소 아침식사를 했고, 오전에만 영월의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서두르지 않았는데도 청령포 - 장릉 - 선돌 - 별마로 천문대, 오전에만 4곳을 다녔다. 호걸이가 암기의 달인인 것을 이때부터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와 공식을 외워서 시험을 준비했다는 호걸이가 새삼 놀랍고 웃음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 아이큐 검사에서 155가 나와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진하는 그런 호걸이가 별세계처럼 보였을 것이다. 진하는 여행 내내 짬짬이 게임을 했는데, 두뇌활동을 자극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물론 재미가 우선이겠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게임에는 시간 투자(?)를 많이 했었다. 다른 친구인 이구와 오락실에서 버블버블 끝판까지 가느라 친구들이 기다리기도 했었지만...

점심 후 동강 국제 사진 전시관에서 차 한잔하며 쉬고 나서 사진전 구경을 하는데, 은석이는 사진 찍기를 정말 많이 시도했다. 평소에 페북에서 많이 나오는 멋진 사진들은 이런 많은 노력과 참신한 시도의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폰카 사용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내가 사진 찍기를 거의 매일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오후에 선돌 영월 관광을 마치고 정선으로 넘어갔다. 정선 하나로마트에서 저녁 준비를 쇼핑 후, 숙소인 '반딧불이 황토펜션'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 저녁은 숯불에 살치살과 삼겹살을 구웠는데, 내가 고기를 많이 담았기에 의무감에 많이 먹었고, 그러고도 남아서 다음날 아침 라면에 추가로 넣어 먹었다. 

숯불이 유지되는 2시간 동안 고기와 소시지를 구우며 술을 마셨다. 술은 그럭저럭 충분히 산 것 같았는데, 많이 모자랐다. 평소 회식으로 단련된 친구들의 주량을 과소평가한 탓이리라. 외진 곳이라 추가로 술을 살 수가 없었고, 이미 술을 마셔서 운전도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씨가 엄청 추워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 하나에 4명이서 잠을 자니, 남자들 특유의 코 고는 소리와 같이 옆에 사람이 있는 불편함이 문제였는데, 나는 특별히 문제를 못 느끼고 잤다. 안대와 귀마개를 준비해서 신경이 덜 쓰였다. 문제는 내가 코 고는 소리가 가장 컸다는 데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친구들은 아마 잠을 설쳤을 것이다. 미안하다. 

둘째 날에는 여행의 가장 큰 쟁점인 레일바이크를 타느냐로 계속 실랑이가 오갔다. 영하 12도에 그런 고생을 하느냐와 실제로는 그렇게 춥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막무가내 고집이 센 내 의견으로 결국 자전거를 탔고, 성격 좋은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복장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우리가 이미 온라인 예약을 했기에 가능했다. 아마 현장 접수라면 이용이 불가했을 것이다.

4명이 타는데, 4명 이상이 준비를 해주셨다. 시작점, 철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 교통통제, 끝나는 지점의 안내, 돌아올 열차 안내, 중앙통제 인원 등 추운 날씨에 고생해주신 코레일의 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날 레일 바이크를 예약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햇볕이 나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나만 그런가?)

사진만은 자신있게..

끝나고 은석이가 추천한 나전역 카페를 갔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기차역 카페는 아담하고 아주 예뻤다. '나전역 크림 커피'와 '고르곤졸라 사과피자'도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은석이 어린 시절 추억담을 들었다. 은석이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은석이는 이곳이 놀이터였다고 했다.

은석이 아버님은 이곳을 포함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역장을 하셨고, 그래서 은석이도 고향이라고 할 것 없이 전국 여러 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특히 태백지역의 고산지대에서 어머니는 나무를 하시느라 우리가 지금 보기에도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비탈진 곳을 은석이를 안고 동생을 업고 다니셨다고 한다.

아이가 굴러 떨어질까 봐 발목을 나무에 묶어두고, 산속에서 어머니는 나무를 하셨고, 여름에 물놀이할 때는 역시 발목에 끈을 묶어 개울 수렁에 빠져도 나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우리들 모두 문상을 갔던 기억, 고등학교 때 은석이 집에 가면 점심을 해주시던 생각이 난다. 그분들의 삶은 힘드셨지만, 우리들에게는 추억과 사랑만 남겨 주신 것 같다.

숙소인 삼척 '쏠비치'로 향했다. 평소 준비성이 철저한 호걸이의 조언을 무시한 운전자 진하의 실수로 우리는 평생 복구할 수 없는 점심 한 끼를 놓쳤다. 숙소에 도착하여 리조트 내부의 치킨집 영업 시작인 4시가 되기를 기다라며 잠깐 쉬면서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매사 철저하고 미리 준비하려는 친구들의 30년 이상의 습관이 작동하는 것 같아 좀 우스웠다.

순서는 바뀌어 횟집부터 갔다. 평일 오후 4시 30분에 술 마시러 간 사람들은 역시 우리뿐이었다. 철 지난 야한 이야기와 아재 드립으로 우리를 끝없이 웃겼던 호걸이 덕분에 분위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운동방법을 직접 소개한 내 모습을 기록한 사진사 은석이도 열심이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껏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분차 현직 아마추어 운동지도사

특히 아직 퇴직 초기라서 조직에 대한 애증도 있었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남아있었고, 자신을 팔고 줄을 선 것처럼 부담을 주었던 아랫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정말 열심히 일을 했지만 토사구팽 당하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도 느껴졌다. 아직은 젊고, 아직도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이 남아있는데... 내가 봐도 좀 무언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인지 둘째 날은 저녁에는 술이 많이 들어갔고, 적당하게 취했다. 오늘 밤은 소원 들어주기였다. 겨울 해변가에서 차가운 맥주도 마시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겨울 바다에 풍덩(?) 하기도 했다. 예쁜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조금씩 더 취해갔다.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표정짓기
호걸이와 댄스 배틀

다시 리조트로 돌아가서 끝내 진하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치킨과 맥주도 마셨다.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웃고 떠들었으며, 은석이는 이런 우리의 개별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숙소에 돌아와 몇 잔을 더 마셨지만, 나는 먼저 곯아떨어졌다. 술은 나만 안 먹었는데...

마지막 날은 일출 전 한 시간 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은석이가 제안한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먼저 천천히 솔비치에서 후진 방조제로 달리기를 하였고, 도착해서는 친구들에게 여명의 사진을 보냈다. 구름이 깔려있어서 완벽한 일출은 어렵겠지만, 나름 멋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삼척 해수욕장에서 은석이를 만났다.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어서 둘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순간적으로 한 두장만 찍는 나와는 다르게 은석이는 좋은 프레임이 나올 때까지 변화를 주면서 찍었다. 멋진 모습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호걸과 진하는 일어나서 천천히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니 혹시 오후가 되면 올라가는 길이 막힐까 걱정도 되어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상경길에 최대한 많이 이동하고,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가다 보니 마지막 바닷가 구경을 하면서 커피 한잔 하자는 제안으로, 고속도로 진입 전 마지막 바닷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옥계휴게소에서 여행의 소감을 나누었다.

친구들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나 역시 조금 있으면 그런 변화가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을 것이다. 변화의 시점에는 항상 머나먼 바다를 쳐다보는 것처럼 막막하다. 막연한 두려움과 막막함, 약간의 설렘과 자신감도 생기곤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인생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만, 문득 옆을 돌아보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같이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한 어느 영화 속 고등학생들 대사처럼 힘이 되는 친구들과의 여행은 항상 영양제 혹은 치유제 같다. 좀 더 많은 시간을 누리면서 살자. 

여행 내내 작품 사진을 찍어준 은석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