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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물고기를 누가 없앴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 물루 미러

이 책은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책을 처음 대할 때의 느낌은 대체로 읽는 내내 비슷하다.  일단 표지부터 중세시대의 그림 같은 분위기가 가벼운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목차 역시 궁서체 같은 진지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성장판 발제 도서의 거의 모든 책이 읽고 나서는 뿌듯하기에 부담은 되지만, 그래도 양식을 얻을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 책을 읽기 전에 표지, 뒷편, 간지, 목차, 프롤로그 등을 보면서 대체적인 내용과 분위기를 파악하라고 추천하는데, 나는 되도록 표지와 두께 그리고, 글자체를 보면서 읽을 시간을 가늠한다. 그리고 무거운 내용으로 추정되면 뒤로 미루고, 가볍고 금방 읽는 책은 빨리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추천사도 보고 프롤로그를 보았지만 느낌이 특별하게 오지 않았다. 과학자의 전기 형식으로 시작해서, 인문 철학, 혹은 심리학 수필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마치 성장 소설의 전개 같았고,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작가의 현실이 오가고, 반전의 느낌도 있고, 자칫 재미없을 수 있는 내용들을 멋지게 엮어가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글쟁이들의 능력이란....)

작가의 어두운 유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낼때, 위로가 되고 롤모델이 되었던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알아가면서, 감탄을 느낀다. 조던은 어린 시절부터 타인들과 어울리지 못했지만,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고, 더구나 평생 모았던 어류 표본들이 두 번이나 망가졌을 때, 절망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조던의 삶은 작가에게 삶의 의미와 의지를 찾게 만드는 좋은 표본이 되었지만, 아주 커다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생학의 아버지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죽기 전까지 우생학을 추종했고, 영향력을 미칠려고 노력했다. 우생학은 미국에서 조던이 활동하던 시기를 지나고, 이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우생학을 받아들이고 유대인을 핍박하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조던의 생애는 지나갔지만, 그가 추종한 우생학, 독단적인 업무처리 방식등은 지적되지 않고,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류'라는 독립된 종은 없다는 것이 후대에서 밝혀지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인정받은 어류 전문가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결국 조던의 이름은 조용히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같은 구성으로 되어있다.  최초의 작가의 어려움(우울증)을 도와주던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력은 작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힘들었고, 우연히 알게 된 과학자 데이비드 조던의 생애를 통해 위안을 받았지만, 다른 모습에 실망하고 불행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삶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는 성장소설 같기도 하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살고싶은 대로 살아'라는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는 성공적인 삶에 대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조언이지만, 자칫 허무주의와 방종을 이끌 수도 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저주 같은 말이 될 수도 있다. 무신론인 아버지의 말은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지만, 실제로 삶에 대한 태도는 정반대이다.

자기 계발 독서모임을 2~3개를 다니고, 좋은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카톡방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대놓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모임과 습관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게 되고, 실제보다 더 능력 있고 똑똑하며 절제력이 강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 긍정적 착각이 내게도 있는가 보다.

이 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인 것처럼) 정형적인 진화의 사다리는 없고, 그저 다채롭고 끝없는 변이만이 있는 자연이라면 우리는 삶의 목적성을 가질 수 있을까? 다윈은 이런 자연의 진화, 즉 변이가 '장엄함'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최종 목적이 없는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사고방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성실한 연구는 어느새 속물 같은 느낌으로 변질되었고, 작가의 어두운 과거와 고단한 삶은 '이대로도 좋아요'라는 항변처럼 들렸지만, 권선징악도 아닌 이 책을 읽고 나니 무언가 어지러움만 커지는 느낌이다. 다만 이렇게 주제를 연결시키는 방법에 대해 글쓰기의 힘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