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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독서

우리는 서로에게 존엄한 존재인가?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작가

몇년전부터 문유석 작가님의 중앙일보 논설을 카카오톡 추천 및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미스 함무라비> 연재를 보다가 , 이후 <개인주의자 선언>, <쾌락독서>로 더욱 좋아하는 작가로 되었다. 무엇보다 엄근친같은 이미지의 판사가 자칭 딴따라 기질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재일 재미있었던것은 <쾌락독서>에서 나온 '짜라시 이론'인데, 결국 나도 숭배하게 되었다. 좋은 책을 고르는 조건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는 이론인데, 그 책에서 추천해준 책 중심으로 몇 권 더 읽은 기억이 난다. 일부 이미 읽은 것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책들이 아주 재미있었다.

<최소한의 선의>는 성장판에서 22년 1월 주제도서로 선정되었다.  12월 13일 초판 발간된지 1달도 안되어 도서로 선정된 셈인데, 문유석 작가님의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 나도 아끼면서 읽으려 했지만 금방 읽어버렸다. 읽을 때는 참 좋은데, 정리하기는 어렵다. 헌법에 관한 이야기는 알겠는데..

이 책에서는 헌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 엄격함, 공정함 등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읽고 나서 가슴으로 깊게 배우는 점이 있으니 참 좋은 책인 것은 틀림 없다.

P008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명 세계를 떠받들어온 기둥이다. 단순히 위반하면 안 되는 규칙이나 강제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법은 문명 세계의 기둥이다.

P010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의 법학자 게오르크 예리네크의 말이다. 법은 도덕을 기초로 형성된 것이지만 도덕과 달리 강제력을 가지기에 법의 규율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도덕’보다는 ‘선의’라는 말이 좋다. 이렇게나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것만큼은 꼭 지키자고 약속한 최소한의 선의, 그것이 법 아닐까. ‘법’이나 ‘도덕’은 차갑고 멀게 느껴지지만 ‘선의’는 따스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작가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도리라는 개념으로서 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도덕처럼 광범위하지도 않고, 법이라는 강제력을 가질만큼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자는 것인데... 그것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P024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존엄한 것은 대한민국도 아니고, 한민족도 아니다. 인간이다. 여기서의 인간이란 무슨 거창한 집단으로 묶여 추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다. 국가는 굶주리지도, 피 흘리지도 않는다. 굶주리고 피 흘리는 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P025
1949년 제정된 독일의 헌법인 독일기본법 제1조제1항이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업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인다.”

독일 헌법인 독일기본법의 예를 들면서, 국가가 각 개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개인들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존엄한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군중과 집단속에서 살아가다보면 각 개인을 존중하기 보다는 집단의 편의를 추구하기 쉽다. 나도 마찬가지로..

P041
평소 포털 기사 댓글에서 보게 되는 국민 여론과 직접 피고인을 눈앞에서 보며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배심원들은 판사들보다 낮은 양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응보 감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에 대해 느껴지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 역시 존중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느 감정이 우세해질지는 알 수 없다.

P055 - 057
’법치주의라는 사고방식’의 주요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법학적 사고방식’이기도 하고, 판사들이 재판할 때 명심해야 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 첫번째는 신중함이다. 상대방 입장도 들어보아야 한다. 증거 없이 함부로 믿지 말아야 한다. 판사들이 배우자에게 인기 없는 이유다. (…) 그건 이쪽 얘기고, 반대쪽 얘기는 들어봤어? 증거는 있대? (…) 두번째는 상대주의다. 절대를 고집하지 않는다. 법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다. 법은 인간사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는 근본적인 질문들만 햄릿처럼 반복하고 있을 수 없다. 세번째는 절차적 정당성이다.이는 분쟁 당사자 모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옳고 그름, 선악, 피아의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전쟁의 논리이거나 종교의 논리지 법의 논리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법감정과 실제로 적용해야 하는, 적용하는 법정신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감정적이고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에 동조하는 나로서는 적용하기 힘든 결정인 것 같다. 판사는 역시 다른 것 같다.

P068
자유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고결하고 도덕적이고 훌륭한 생각만 보호하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생활만 보호하지 않는다.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가 있다.

문유석 작가, 그 이전의 판사시절에도 매번 강조했던 내용이 이 문장에 제일 잘 나타난 것 같다. 가치 판단이 없는 자유, 법을 훼손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 피해가 없는 한 사생활이 보호될 자유는 꼭 필요하다는 이문장을 작가의 주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P130
롤스 <정의론>의 핵심, 요즘 말로 ‘킬링 포인트’만을 추려낸다면 두가지다. ‘무지의 베일’, 그리고 ‘최소 수혜자 배려. 문장으로 이어서 풀면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라면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사회계약에 합의할 것이다.’가 되겠다.

P132
그래서 그러한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사회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가 정의에 관한 제2원칙이다. 제2원칙은 기회균등 원치과 차등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기회균등 원칙은 먼저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된 상태에서의 경쟁이어야 그 결과로 발생하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고, 차등 원칙은 그 불평등이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고 본다.(…)
‘무지의 베일’과 함께 또하나의 킬링 포인트인 ‘차등 원칙’은 곱씹어 볼수록 깊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 이 원칙은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나온 중요한 내용이지만 롤스의 <정의론>을 요약한 내용을 이 책에서 반복하는 이유는 작가도 그 정의라는 개념을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P146-147
여러 번 강조했듯이, 헌법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핵심 가치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다. 자유도 평등도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수단이다. 공정성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에게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오히려 인간의 존업성을 저해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무한한 경쟁을 통해 쉴 틈 없이 낙오의 공포 속에 사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도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거꾸로 경쟁 자체가 목적이고 인간은 그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다.

그렇기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경쟁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장치들이 발전한 것이다. 헌법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 강조한 내용이다. 자유, 평등, 공정성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의구현도 결국 조건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간 존엄의 원칙아래 실행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무언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P165
과잉금지의 원칙은 결국 끝장을 보려 하지 말고 멈출 줄 알자는 사고방식이다. 끝장을 보는 것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멈추는 것은 비겁한 타협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보면 묻고 싶은 것이 있다.인간사회에 정말로 ‘끝장’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청산하고, 척결하고, 쓸어버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은 있는지.

마지막으로 강력한 정의를 외치는 과격한 사람들에게 날리는 일침으로 이 책은 끝난다.  과거 카르카고와 로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끝장이라는 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피를 보면서 정의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자칭 딴따라 전임판사인 작가는 우리를, 나를 조용히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