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중 하나는 거짓말 - 김애란

이 책에서 알려준 서로에 대해 친해지거나, 솔직해지는 방법으로 이용하는 자기소개법이 좋았다.
나도 나에 대해 5가지를 소개해보자.
1.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20번 정도 완주했다.
2. 나는 매일 운동하지만, 과체중을 넘어 비만상태다.
3. 나는 고등학교때 불우이웃 돕기 용품을 공개적으로 받은 2명 중 하나다.
4. 나는 같은 과목을 3년간 낙제하여 졸업을 못할 뻔 했다.
5. 나는 아내보다 오히려 처남하고 더 친하다.

이 방법이 참신하지만 역시 내밀한 이야기는 못하겠다. 아무리 솔직해도 청소년 시절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과 망상을 표현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남들 앞에서 솔직하지는 못하겠다. 거짓말과 상관없이 우리는(나는) 그때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요. 끝내 살아남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누구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야기요.
상상 속 어른은 잠시 침묵하다 ‘그런 일이 생길 순 있어도 그런 이야기가 남기는 어렵다’고 했다. ‘뭔가 겪은 사람만 있고 그걸 전할 사람이 없다면, 다른 이들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그러곤 중요한 사실을 덧붙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 적어도 한 사람은 남겨두어야 해, 한 사람은.

이 책을 읽는 비슷한 시기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같이 읽었다. 그 책에서는 그 비극의 역사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후대와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마지막 날 광주시청 사수대에서 철수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비겁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기 어렵다. 끓어오르는 청년의 감정은 순간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마찬가지로 세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고통과 멈추지 않는 뜨거운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해서 극단적 선택마저 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은 아련해지고, 5년, 10년, 30년이 지나면 작은 흉터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숙해지고, 강해지고, 현명해지고, 무딘 상황들에 둘러싸이게 되니까.

—그냥 ....이야기가 좋아서?
순간 소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래? 넌 이야기가 왜 좋은데?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이…… 있어서?
  소리가 신기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반댄데.
  —뭐가?
  —난 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지우가 잠시 먼 데를 봤다.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한 이야기면 더.
  소리도 시선을 잠시 허공에 뒀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그런가?
  —응.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최초의 이야기는 어디로든 갈 수가 있다. 시작은 무언가 영감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알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흐르는 대로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가 남들 다 보는 데서 자신에게 실컷 욕을 퍼부은 뒤 “아, 미안.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라고 으스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빈말 못하고 솔직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실은 그게 어떤 무능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선 그리기의 기초’라는 영상에서 그녀는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카메라에 팔 부분만 잡히게끔 각도를 조정했다. 그러곤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다 종이 위에 긴 선 하나를 그은 뒤 “선은 우리가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라 했다. 그리고 몇 마디 여담을 보탠 뒤 온화하고 위엄 있게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좋은 직선을 그려보자”고.

하지만 이야기가 있다고,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솔직함이라고 표현된 무례하고 거친 것들은 무능함과 결핍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을 좋은 직선으로 그려보는 것이 나의 현재 한계이고, 숙제이며, 우리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어떻게 이렇게 이쁘고 멋진 직선을 그리는 것일까? 어떤 연습을 해야 될까? 

—지연이랑 얘기하고 싶어, 밤새. 우리가 함께했던 일뿐 아니라 지연이가 없는 동안 일어난 일 모두. 그리고 아저씨가 어릴 때 누군가와 무척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말들까지 다.
  —……
  —지연이가 생전에 차마 못하고 간 말들도 다 들어주고 싶어. 지연이가 그렇게 된 뒤로 그 생각을 가장 자주 해. 내가 조금만 더 많이, 더 자주 지연이 이야기를 들어줬더라면 그런 일이 안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어제 오랜 친구들 5명이 점심을 먹었다. 3차 병원에서 뇌종양 치료도 포기한 한 친구를 위로하려 모였다. 살아있는 동안 아낌없이 자신을 위해 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망설이지 말고 해 보라는 아픈 친구의 말은 무겁게 다가왔다. 서있는 위치가 다르면 생각도 다를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친구들이 집으로 오면서 다른 견해를 보였다. 돈을 아끼는 것은 과정이 즐거워서인데,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보다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이 즐거움인데... 우리는 어느덧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중산층이 되었고, 이제는 돈에 크게 어려움 없이 우리의 삶에 즐거움을 느끼고 사는 것인데...

소설 속 아저씨가 느끼는 죄책감은 당연할 수도 있다. 내게도 가족이, 친구가 아프면 그런 안타까움이 나올 것 같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았을걸... 그런데 아픈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견해가 달라도 서로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지속될 수 없는 마지막 상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 친구는 이미 이야기를 들어주려 해도 이미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 슬픈 경험이었다. 좀 더 회복이 되고, 건강해지면 지금의 삶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에 대한 애착이 강한 만큼 그의 육신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그저 안타까울 뿐...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그러자 실제로 항상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가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무언가 내 마음속에 극복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어릴 때 느낀 가난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느낀 미안함, 좌절감 등이 내게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고, 악착스럽게 극복하려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와 내 형제들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가난에 대한 잠재적 의식은 남아있는 것 같다. 30년 동안 같이 맞벌이를 해준 (가사와 육아는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아내 덕분에 나는 현재 가난과는 거리가 멀고, 불안감이나 열등감 등도 이젠 없어진 것 같다. 이 부분은 책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치료법은 그저 돈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역시 취미생활에 불과할 수도 있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돈을 모으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고, 친구와 오랜 시간 보내고, 공동체를 가꾸어도 우리는 늘 불안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도 없고, 사는 대로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와 현재의 내 환경을 조화롭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으로 자신의 궤적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독서의 모습이고, 글쓰기의 전부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서, 일요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블로그를 써본다. 오랜 시간 다른 곳으로 갔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운동, 독서, 글쓰기 그 자체로 내 삶을 기쁨으로 넘치게 하는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