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천일 달성
어제 기준 천일간 금주를 했다. 어제와 오늘 온라인 모임이 4곳이나 있었고, 오늘은 오랫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지만, 자랑할 기회를 잡지못해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본다.
그 좋은 술을 왜 끊었나
왜 그런 무지막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술을 끊을 각오라면, 조금 줄일 수 있었을텐데, 술을 끊으면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지 않나, 그럼 무슨 낙으로 사느냐, 등등의 질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정답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금주가 정답이었다. 술을 줄일 수 없어서 끊었고, 사회생활은 더 편해지고, 다른 낙이 저절로 생긴다. 다만 그걸 좋아하고 안하고는 본인의 선택이다.
나는 술을 줄일 수 없었다. 체중이 증가하고 몸이 무거워지던 2000년 무렵부터 고민을 하다가 2002년에 새벽운동을 하면서 식사와 음주를 줄였다. 운동의 재미는 늘어났고, 몸도 좋아졌다.
그런데 장기간에 걸쳐 다시 체중은 증가하고, 컨디션은 나빠졌다. 수면의 양도 질도 떨어지고, 낮에 멍한 느낌이 많아졌다. 머리가 나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차례 술을 줄이거나 한시적 금주를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업무시간이 많고, 짧은 시간내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쉬고 싶어서 거의 매일 술을 빨리 몇잔 마시고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주 40시간 제도가 생겼다. 처음에는 술도 마시면서 잠도 푹 잘수 있었다. 거의 매일 운동도 가능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그날과 다음날 운동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읽는 것도 흐름이 자주 끊겨서 쉽지 않았다.
술을 줄이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담배를 끊으면서 그걸 경험했다. 줄이는 것은 자신없고 아예 끊기로 했다. 주변에서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정색을 했다. 사회생활 포기할 거냐고..
지금처럼 술을 자주 마시면 사회생활이 더욱 문제가 될것이라 생각했다. 30년간 술마시는 사회경험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느꼈다. 이제 남은 고민은 2개 였다.
그 중 하나는 어떤 낙으로 살아갈까였다. 친한 사람을 만나서 오랜 시간을 이야기 할때는 술없이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술은 안마시는 친구와 단 둘이 있을때에도 나는 혼자 술을 마셨다.
주변의 남자들은 거의 술을 마셨고, 안마시는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 할수 없었다. 여자들과는 뭐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모르겠다. 새로운 모임을 찾아 다녔다. 술을 안마실 수 있는 인간관계를 새로 만들었다.
힘든 금주를 어떻게 했나
누구나 술을 혼자서 끊는 것은 어렵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중 어느 날 책을 읽고 바로 AA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을 찾았다. (eaglemanse.tistory.com/9 : 내가 사랑한 술 놓쳐버린 삶 )
처음 모임에서 뻘쭘했다. 많은 분들이 병원에 입원하고 상담하다가 오신 분들인데, 책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온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각증상을 빨리 느끼고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술을 끊는 사람들이 경험담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매일 운동하고, 독서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술마시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연락했다.
술을 마시는 생활 패턴을 없애버렸고, 외로움이나 허무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바쁘게 만들었다. 강력한 매일의 루틴을 만들어서 카톡방에 인증을 하고, 가족들에게 공유를 했다.
처음에 쉽지는 않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붙었고, 난이도는 낮아졌다. 처음 목표는 30년 단주였는데, 속으로는 긴가민가 했었다. 30년 술을 마셨으니, 30년간 끊겠다는 말이 현실감이 다가왔다.
불편한 사람들이 생겼다. 옛 친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이해를 해주었다. 역시 고마운 친구들이다. 직장 및 사회에서 만난 술친구들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내가 술좌석에서 술을 안마시면 표정이 영 아니었다.
그러나 꿋꿋히 참석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랑 이야기가 목적이 아닌, 술이 목적인 사람들은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뭐 그렇게 인간관계가 좋거나 화려하지 않았으니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절로 정리되는 인간관계는 내게 변화의 기회가 되었다. 비우지 않고는 다른 새로운 것을 채울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다른 새로운 것을 마구 넣으니, 기존의 것들이 점차 자리가 없어졌다.
금주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
술을 끊으면 사회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이야기다. 술좌석 정치와 밀당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남이가'는 조용한 술좌석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에도 단점이 있다. 음주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치열한 심리적인 협상과 의전이 필요하다. 그런 정도의 노력을 할 정도라면 음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그것을 빙자한 자기 도취다. 한 두번은 그런 치열함이 있겠지만, 술좌석의 닳고 닳은 매너리즘과 좁은 인간관계는 결코 정치력이나 신용을 쌓지 못한다. 회사의 경영층 사람들은 결코 취하지 않는다. 술좌석도 업무일 뿐이다.
내게는 그정도의 술좌석이 절실하지 않다. 상사별로 술모임에 대해 호불호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반대로 술좌석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더 자주 일어난다. 스트레스로 인해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서 더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불편한 점은 있다. 아주 오랫만에 사람들을 만났을때다. 이 사람들은 보통 술 한잔씩 하게 되는데, 술을 안마시면 아무래도 예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형식적인 만남이 될수도 있다. 이런 것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모임이나, 사람들을 만났을때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애로사항이 있다. 보통 담배를 같이 피우거나, 술을 한잔 하거나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쉬운데 이런 것이 어렵다.
좋은 점은 아주 많다. 체중 감소, 수면 증가, 그로 인해 암기력과 집중력이 강해진다. 사람에 대한 인식의 민감도도 높아진다.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기계발의 기회도 많아진다. 몇가지를 제외하면 금주는 정말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된다.
술을 줄이면 좋겠지만, 내게는 어려운 과제다. 그냥 끊는 것이 내게는 답이다. 앞으로 30년 정도 끊어볼 생각이다. '내게는 이제 더이상 술은 상관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