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독서

8년만에 재도전한 <코스모스> 읽기

독수리만세 2020. 7. 5. 11:51

지난 4월 말 온라인 친구인 액터 정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코스모스 같이 읽으실래요?" 우주과학에 관한 700페이지 책을 같이 읽자는 것이다. 집의 책장에 고이 모셔둔 책을 펴보았다. 한 1/3 정도 읽고 접어둔 표식이 보였다. 내가 언제 읽었을까? 2012년에 특별판이 나온 것을 기념으로 사서 읽었던 것 같다. 역시 벽돌 책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어렵고 따분해서인지 그 당시에 읽다가 포기한 것 같았다.

같이 읽겠다는 답신을 보내고 난 후, 며칠 뒤 카톡방에 초대되었다. 현재 단톡 방의 사람 수는 9명이다.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주부도 있고, 직장인이면서 각종 모임을 왕성하게 기획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 시간 내기 어려운 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자 인증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말에는 왕성하게 인증하는 카톡들이 오가면서 자극도 받고, 위로도 되며 그렇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벽돌 책 읽기 방(코스모스 방) 친구분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도 이 부분이 추천을 받았지만 칼 세이건의 문장은 참 아름답다. 이 문장으로 인해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칼 세이건이 얼마나 훌륭한 과학자였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냉철한 과학적 지식과 성숙한 인문학적 성찰과 성실한 활동가로서의 일생이 느껴졌다. 이런 칼 세이건의 모습을 본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P007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어가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규,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에서>

과학의 시대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 한다. 종교의 순기능과 삶에 대한 이정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이 그 짧은 시간에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정작용이다. 과학은 반대의견의 사람들이 극렬하게 싸우지 않고 누구나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반증과 검증이라는 사고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과 수학을 인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알면 알수록 무지의 세계도 훨씬 더 넓어진다는 것처럼 우리는 지식 추구에 대한 즐거움은 넘쳐흐른다. 스스로의 무지와 편견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의식은 좀 더 커질 수 있다고 책의 앞부분에서 강조하고 뒷부분에서 다시 반복한다.

P029
한마디로 과학의 성공은 자정 능력에 있다. 과학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그 전에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던 미지의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 합리적 현상으로 바뀌어 간다.

P660 
과학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과학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줄 안다는 것이 하나의 특성이다. 또한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그리고 과학 하기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단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이란 가정은 모조리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과학에서 권위에 근거한 주장은 설자리가 없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있는 그대로 이해돼야 한다. 잇는 그대로의 코스모스를 우리가 원하는 코스모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하다고 생각됐던 것이 거짓으로 판명될 때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확고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P036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머스 헉슬리 1887년

P658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질 당시에 살았던 테오프라스토스는 "미신은 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비겁함"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에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똑바로 둘러볼 필요가 있다.

P659
진정한 의미의 용기는 자신의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찾아낸 결과가 자신의 희망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코스모스의 조직과 구조를 끝까지 탐구하여 그 깊은 신비를 밝혀내려는 이들의 것이다.

P161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우주과학 개론서답게 이전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다시한번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이 많다. 1광년이라는 거리에 대해서다. 1광년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거리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우주의 크기가 135억 광년이라니...!  우주의 크기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실감하게 되었다. (최근 450억 광년 추정의 관측도 된다고 하긴하던데..)

P038
빛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 광분만큼 떨어져 있다. 빛은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천문학자들은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이라고 부른다. 광년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재는 단위이다. 

P390
모래를 한 줌 움켜주면 그 속에서 약 1만 개의 모래알들을 헤아릴 수 있다니,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의 개소보다 더 많은 수의 알갱이들이 내 손에 들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볼 수 있는 별은 실재하는 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맑은 날 밤하늘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은 가장 가까운 것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주에는 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많다. 지구 상의 해변이란 해변 모두에 깔려 있는 모래알들보다 우주에 있는 별들이 훨씬 더 많다.

시간과 공간의 크기에 대해 다시 알게 되면서, 그에 따른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한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현시대를 사는 사피엔스라는 종으로서 살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찰나인 것인데,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유구한 시간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미미한 것이며,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지속에 대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 

P079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P091
핵산의 가능한 조합들 중에서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을 통해서도 구현되지 않은 조합들이 아직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니!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을 설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뛰어나다는 것은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뉴클레오티드의 순서를 어떻게 바꾸어야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바람직한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뉴클레오티드를 우리 맘대로 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에 떨게 하는 우리 미래의 한 단면이다.

<인디팬던스 데이>나 <우주전쟁>처럼 어찌 보면 압도적인(?) 기술 차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결국 우연이든 의지든 퇴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희박하다는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을 때는 문명의 격차가 몇백 년에 불과했는데도 꼼짝없이 전멸을 당했는데, 100만 년의 기술격차가 있다면 전쟁의 결과는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평화로운 존재와 만나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P620
공상 과학 소설과 UFO 문학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가 문명과 문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외계 문명이 소유한 우주선이나 광선총이 우리 지구 문명의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쌍방이 대등한 수준의 전력을 갖고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실제로 은하의 어느 두 문명권이 대등한 수준일 리가 없다. 그 어떤 대결에서든 항상 한 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100만 년이라는 세월은 엄청 긴 시간이다.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가진 문명권이 지구로 와서 무엇을 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그들이 기술과 과학의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앞설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이 악의 찬 외계 문명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살 줄 모른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P621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중략)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지식의 확장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빙하기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 태양이 움직이는 궤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흔히 이야기하는 지구의 충돌 가능성과 기후를 포함한 먼 미래의 예견도 가능할 것이다.  

P499
하나의 별이 은하의 중심을 도는 속도는 일반적으로 나선 팔의 패턴이 움직이는 속도와 같지 않다. 따라서 별은 나선 팔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은하 중심을 일주한다. 우리 은하에서 태양이 은하의 중심을 도는 회전 속도는 초속 200킬로미터 정도이다. 이 값은 시속 72만 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기는 하지만 은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약 2만 5000광년이나 되기 때문에 이 속도로 한 바퀴 도는 데 2억 5000만 년이나 걸린다. 그런데 태양의 나이가 대략 50억 년이므로 태양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은하의 중심을 20번 정도 완주했음을 알 수 있다. 나선 팔을 들락날락하기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여러 번 은하의 중심을 맴돌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은하에는 뚜렷하게 드러난 나선 팔이 두 개 있다. 태양이 은하 중심을 일주하는 동안에 하나의 나선 팔 안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 4000만 년, 다음 나선 팔을 만난 때까지 나선 팔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8000만 년 그리고 다음 팔로 들어가서 또 4000만 년 을 지내고 이팔을 벗어나서 역시 8000만 년을 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P500
태양이 암흑 성간운과 만나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암흑 성운을 이루던 성간 티끌들이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빛을 차단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지구의 기온이 내려갈 것이다. 지구에서 대략 1억 년의 주기로 발생했던 빙하기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기존에 내 생각을 깨준 지식이 참 많았다. 중심의 개념을 깨준 내용도 그렇다. 도넛이나 구의 표면의 2차원 세계에서는 중심도 없다. 그리고 그 2차원 세계가 늘어난다고 하면 어디서 어디로의 확장이라고 방향성을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3차원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어렵다.

P529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우주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 경계 바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차원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비록 2차원 우주가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어도 그 공의 표면에 해당하는 2차원 우주에서는 중심을 정할 수 없다. 그런 우주의 중심은 그 우주에 있지 않다. 중심이 있다면 그것은 그 우주의 주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3차원에 있다. 다시 말해서 구의 중심에 있다. 납작이 나라의 영토는 구의 표면일 뿐이다. 그러므로 2차원 우주는 유한하다. 그렇지만 경계는 찾아볼 수 없다. 경계 바깥의 정체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질문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납작이 나라에 사는 납작이들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2차원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P530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빨리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들이 공간에 붙박여 있는데, 공간이라는 이름의 그 천은 모든 방향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서 대폭발이 일어난 곳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이제 "우주 도처"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기초로 2014년 동영상으로 제작된 코스모스 13부작 다큐멘터리 1편에서 닐 타이슨 박사가 자신이 17세 일 때 칼 세이건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이며, 자신이 우주에 대해 꿈을 가지게 된 것을 이야기하였다. 칼 세이건도 어릴 때 책을 통하여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키운 내용을 책에 담았다. 우주탐험과 지구의 미래(환경보호)에 대해 강조했던 행동했던 칼 세이건의 마음이 글로 느껴졌다.

지난 세대에 우리 인류를 지탱해준 여러 활동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과학의 연구와 발전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강조하며,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우리가 코스모스를 제대로 관측하고 깊게 알아가기 시작한 것은 몇백 년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기원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희소하며 각자의 인간은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똑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코스모스처럼 프레임을 크게 가져간다면 우리는 인종, 국가, 성별 등에 국한하지 않고 다 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P037
우주탐험,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설렌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 놓았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P487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게 되고 생명은 곧 지능을 가진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 물질에서 출현한 생물이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의 기원을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이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P631
코스모스의 발견은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이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우리는 지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해 왔다. 그것에 비교한다면 아리스타르코스에서 현대까지의 기간은 0.1퍼센트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오늘에 와서야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리의 존재가 우주의 목적일 수도 없다는 현실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1조 개의 별들을 각각 거느린 1조 개의 은하들이 여기저기 점점이 떠 있는 저 광막한 우주의 바다에 부질없이 떠다니는 초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P654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과 연구는 결코 게을리할 수 없는 우리의 절대 의무이다. 우리는 이제 사회, 정치, 경제, 종교라는 이름의 제도가 가르쳐 온 전통적 지혜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이웃이 지구 어디에서 살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물론 쉽게 달성될 수 있는 성질의 목표는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제안이 비현실적이고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인간의 동질성에 근거한 이 방안 이외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 것이다.

우주에 대한 과학의 이야기이자, 지난 과학자들의 노력을 이야기하고, 지구의 자연을 아끼고, 인류에게 좀 더 지구적인 관점에서 사고하기를 호소하는 내용이라 많은 부분이 포함되었다. 많은 내용 덕분에 몇 가지 과학적 지식도 얻게 되었다. 책이 처음 나온 지 40년이 된 과학책인데(20년 전에 개정본이 나왔지만), 일부 업데이트가 필요할 뿐, 업그레이드도 필요 없는 책이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고, 우리 인류와 지구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이다. 이것으로 과학에 대해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고마운 책이다. 같이 읽자고 제안해주신 액터 정님께 감사한다.

2012년 구매하여 2020년에 다 읽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