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삶을 배운다.
나에게는 세분의 삶의 멘토가 있다. 나에 대한 영향력이나 그분들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부적인 실천력이다. 행동으로 보여준 그분들은 내게 갈길에 대해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분들이다. 친구나 배우자도 포함될 수 있지만 멘토라기보다는 동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한분은 내게 새벽 달리기를 가르쳐주신 채제석 기원님(아주 옛날 정년퇴임을 하셨다)이다. 또 다른 분은 일곱째 삼촌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 어머니다.
훌륭한 사상은 생각이 깊은 사람에게만 말을 걸지만, 훌륭한 행동은 모든 인류에게 말을 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시작의 기술, P137>
1) 위선도 선이다.
첫 번째 채제석 기원님은 2002년 나와 새벽 달리기를 약 6개월간 같이 했었다. 동네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10바퀴 정도 뛰는 것이다. 새벽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밤새 사람들이 찾은 공간에는 소주병, 음료수병, 과자봉투 등등이 널려있었다. 처음 3바퀴 정도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뛰시기에, 뒤에서 따라 뛰던 나는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초기에는 당황을 했었다. 며칠 뒤에는 같이 주우면서 뛰니까 한 바퀴나 두 바퀴면 쓰레기를 모을 수 있었다.
10바퀴이자 약 20~3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운동시간 중 휴지 줍기 달리기가 끝나면, 천주교 신자인 채기원 님은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달리기를 했다. 묵주기도가 끝나는 시간이 우리가 달리기를 마치는 시간이었다. 얼마 뒤 나는 그분께 휴지 줍기 봉사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간단한 대답을 하셨다. 좋은 일을 하지만, 주변을 의식하게 되고, 내가 '진심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고민 끝에 스스로 답한 것이다.
"위선도 선이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셨다. 본인이 실제로는 좋은 의도가 있든 아니든 실제로 선을 행하면 그것은 결국 선이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잡념과 유혹 등을 물리치는 간단한 주문이자 가르침이었다. 용인 수지로 이사 가신 기원님과는 6개월이 채 못 되는 기간이지만, 이 짧은 기간에 나는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위선도 선'이라고 말하시면서 실제 행동을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이분의 모토이다. 남이 뭐라 하든, 내가 어떤 느낌이 들던 일단 선행을 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휴지를 주우면 되는 것이고, 기도를 매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선도 결국에는 선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매일 실천의 엄청난 힘이다.
2)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되잖아
일곱째 숙부님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4학년 나이 때 공부에는 소질이 없다고 판단하시고, 스스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셨다. 장성한 여러 형제가 있었지만 일찍부터 어린 농군으로 자청한 것이다. 그시대 유행했던 용어로 최연소 새마을 농군이었다. 농사를 짓다가 14살에 트럭 운전 조수로 취직을 했다. 그때부터 집을 떠나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어린 나이에 술집 등에서 주정을 하는 어른들 틈에서 잠을 자고, 피곤한 운전사를 대신해 야간 운전을 하거나, 추운 겨울밤 산길을 넘다가 트럭이 전복되어 밤새 웅크리고 추위에 떨곤 했다. 그때부터 고생한 탓인지 기관지나 하체 관절부 혹은 피부는 평균 연령을 넘어서 10년~20년 연상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또래의 평균 연령에 거의 도달했는데, 목욕탕에 가면 평균 연령보다 10년 이상 연하가 된다. 매일 새벽 동네 뒷산 2만 보 걷기와 틈틈이 하는 근력운동 덕분일 것이다.
그 옛날 사람들이 그렇듯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심지어는 군대도 갔다 오지 못한 숙부님은 학력 핸디캡을 평생 안고 살고 계신다. 35세까지는 운전사로 일을 하셨고, 50세까지는 2번의 부도를 이겨내느라 사업에만 전념을 하신 탓에 제대로 배울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몇 가지 삶의 원칙을 지키고 계신다. 바로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되고, 내가 조금 더 돈을 내면, 내 마음도 상대편도 편안해진다. 잠깐은 억울한 것 같지만 그건 그냥 내가 감수하면 된다. 행여 상대가 내게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조금 더 하면 아무 문제 없어진다'
형제 중 한 명이 잘되면 다른 형제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옛날 분들의 생각이다. 숙부님의 사업체에는 일가친척들이 많이 근무한다. 가난한 집안이고, 형제가 많으니 바람 잦을 날이 없다. 조카들과 처가까지 고려하면 돌봐주고 싶은 사람들은 차고도 넘친다. 나는 장손이지만 그런 능력도 그릇도 되지 못한다. 삼촌은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손해 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셨다.
한 번의 부도와 부도직전까지 가면서 버팀목이 된 것이 있다. 거래처에 몇억씩 채무가 쌓였는데, 그분들이 몇억을 추가로 빌려주면서 하는 말이 '정사장이니까 일어날 수 있어'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돈이 무척 궁한 사람들인데 손실을 두배 이상으로 만들면서 사람을 믿은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신용을 얻을 수 있었는지 나는 안다. 가족들 모임이면 음식을 미리 준비하고, 차를 가지고 먼 거리도 픽업을 해주시고, 노인들과 어린이들에게는 빼놓지 않고 작은 용돈을 챙기시고, 만나는 사람에게 '힘들지? 어떻게 지내? 정말 대단하다. 잘 해낼 거야.'를 입에 달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요번 새해에는 전날 밤에 숙부님 댁에서 온 가족들 새해 전야 파티가 열렸다. 나는 내 가족들과 전야제를 보내고, 대신 새해 첫날 숙부님과 2시간 정도 포천 숲길을 새벽 트래킹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보통은 혼자서 자신과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인데,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큰 행복을 준다. 숙부님이 요즘 지내시는 것과 고민도 같이 들었다. 새벽의 힘이랄까 나도 숙부님과 친구처럼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현장에서 물러날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시는 것 같다. 노년을 준비하셔야 하는 것이다. 내가 요즘 필 받고 있는 독서에 대해 권장했더니, 학력과 언어소통에 핸디캡을 느끼고 계셨다. 돌아와서 고민하다가 내가 책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문체는 이해하기 쉽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은 그런 소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위화의 '인생'으로 시작했다. 온라인 주문 배송을 했다. 도착 즉시 감사의 전화가 왔다. 역시 실천의 힘을 늘 발휘하시는 분이다. 늘 배우면서 나도 보탤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분이다.
3) 생각나면 바로 실천한다. 잘못되면 바로 정정한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셨다. 실제 해방 후 전쟁 전에 시골에서 여자를 학교 보내는 집이 많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조언을 받고 바로 밭으로 뛰어가서 소를 몰며 밭을 갈던 외증조부를 방해하면서 학교에 보내달라고 시위를 했다. 위험하기도 했고 성가시기도 했기에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욕을 하면서 반승낙을 했던 것이다. "박살할 년 같으니라고. 학교를 가든 말든 맘대로 해라". 바로 직후 어머니는 학교로 뛰어갔고 교감선생님께 학교를 다니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어머니는 몇 개월 뒤 월반을 했고, 전쟁 후 다시 복학을 해서도 월반을 했다.
어머니는 신혼 초에 친정으로 혼자서 돌아가신 적이 있다. 도저히 못살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자 외증조부께서 잘 먹이고, 잘 재운 후 다음날 아침 손녀딸인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시댁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사돈인 내 할아버지를 젊잖게 경고하시고, 어머니에게는 이런 말을 하셨다. "너는 이제 이 집 귀신이다. 이 집에서 죽어라" 그 뒤로 어머니는 우리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 거의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찬바람이 콧김을 스칠 때가 참 좋다고 하셨다. 소나무 향이 강한 새벽 숲을 걷는 것을 좋아하셨다. 가족여행은 항상 새벽에 출발했다. 차가 절대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전날 여행 준비를 거의 해놓는다. 우리 부부가 피곤하여 준비가 부족할 때도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면 어머니는 먹을 것을 포함한 모든 준비를 해놓고 계셨다.
덕분에 우리는 5시 이전에 항상 출발할 수 있었다. 전북 무주에 아침 7시 전에 도착한 적이 있다. 강원도는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이지만 7시에 아침 먹을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차 안에서 먹을 음식을 새벽에 미리 준비하셨다. 어린아이들이 무리 없이 먹을 주먹밥과 국을 준비하셨고, 여행에서 이용할 음식과 도구들을 모두 준비하셨다. 우리는 여행 가서도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모든 음식 재료를 준비하신 것이다. 조금 번거롭지만 좋은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와 살면서 어렵고 불편한 점도 있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의 성격에 갈등이 지속할 여지가 없었다. 바로바로 대화로 풀었다.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날 저녁 이야기를 하셨다. 결혼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부간의 삶의 방식이 틀릴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 되면 어머니는 어머니가 고칠 것과 우리에게 부탁할 말을 정리해서 이야기하셨다. 시어머니 말씀이니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상호 절충안을 제시하셨다. 갈등은 곧바로 풀어가셨다.
어머니의 뜻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젊은 시절 부동산 가치가 좋은 장소로 이사를 하시려고 했었다. 아버지는 교육환경이 안 좋다고 반대를 하셨고, 어머니는 바로 승복을 하셨다. 그때 어머니 의견을 관철했다면 재산증식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에도 이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에도 조금 더 무리를 했었다면 우리는 신촌에 우리 집이 있었을 것이다. 불안한 벌이로 인해 무리한 투자는 불안했다. 옳든 그르든 결정되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장기적인 인생의 흐름에서 좋아진다는 낙관을 바탕으로 사셨다. 그래서 잘못된 것은 바로 고치면 되었다. 지금의 문제는 바로 해결한다. 도망가지 않는다. 싸울 때는 싸운다. 도리를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합의를 하면 빠르게 실행한다. 안 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먼저 집중하셨다. 장기적으로는 방법을 찾아본다. 이런 것이 나와 아내에게 그리고 내 형제들에게 어느 정도는 각인되었다고 생각해본다.
4) 뭘 실천할 것인가?
2020년에 봉사의 항목을 찾아서 계획을 잡아보려 했다. 2019년에는 채제석 기원님처럼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면서 쓰레기를 주웠다. 몸이 좋아지면서 달리기 장소는 탄천으로 바뀌었고,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내가 뛰고 난 이후 축구동호회에서 휴지 등 쓰레기를 줍는다. 굳이 내가 별도로 시간을 내어 쓰레기를 주울 필요가 없어졌다. 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것도 생각했는데, 아직 마음속에 와 닿는 단체가 없었다.
숙부님과의 숲길 걷기 이후 책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는 분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도 내 느낌이 맞다면 숙부님께 맞는 책을 골라서 한 달에 한 번씩 보내드리면 숙부님도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선도 선이다'라는 것을 실행하면 된다. 어머니처럼 '생각나면 바로 실천한다'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숙부님처럼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것'이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30분 고민하고 책을 골라서 주문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책 선물을 할 사람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 아직은 없다. 지내면서 느낌이 오는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면 될 것이다. 올해는 책 선물이 내 봉사활동이라 마음먹는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책을 받을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만나보아야 하고, 느껴보아야 한다. 또한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올해는 그런 사람을 5명 이상 찾아서 책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