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독서

인류가 계속 생존할 수 있는 방법

독수리만세 2021. 12. 20. 19:45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서 우즈

이 책은 사전 검색 없이 바로 읽었다. 작가 소개란을 스치듯 대충 지나갔고, 읽으면서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수필에 가깝거나, 심리학 서적일 줄 알았는데, 인지 생물학 혹은 진화인류학에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었다.

사람 종은 약 600만 년에서 900만 년 전 보노보와 침팬지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래 호모 속 안에서 다른 수십여 종을 만들어냈다. 화석과 DNA 분석 결과, 약 20만 년에서 30만 년 전 사이의 대부분 기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으며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 종과 공존했음이 밝혀졌다. - p022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종과 경쟁구도였는데, 우리만 왜 번성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추론을 한다. 특히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 시 체격 구조나 두뇌 크기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좀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고 하는데, 바로 친화력으로 추정한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 -p029

그런 친화력으로 가장 번성했지만, 또한 친화력의 범위 밖에 있는 존재들에게는 무자비한 존재라고 한다.

사람(호모 사피엔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작은 무리로 살다가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무리로 전환되었다. 뇌가 더 크지 않더라도, 협력을 잘하는 더 큰 규모의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종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었고 또 그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인류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p032

친화력을 기준으로 분리하여 짝짓기를 반복한 결과 엄청난 차이가 발생했다고 한다. 자연에서는 이런 차이가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로 나타난다고 한다. 

실험은 명쾌했다. 벨랴예프의 제자 류드밀라 트루트는 여우 개체군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동일한 조건으로 사육하되 그룹을 분류하는 기준을 딱 하나만 두었는데, 우선 첫 그룹은 사람에 대한 반응을 기준으로 나눠 번식시켰다. 이 그룹의 여우들이 생후 7개월이 되었을 때 류드밀라는 조심스럽게 그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다가오거나 겁먹지 않는 여우는 비슷한 반응을 보인 다른 여우와의 짝짓기에 선택되었다. (…)
벨라예프는 이 실험에 여생을 헌신했고, 벨라예프가 사망한 뒤로는 류드밀라가 실험을 이어받았다. 내가 시베리아에 갔을 때는 이 실험이 시작된 지 44년이 지난 뒤였는데, 보통 여우들은 조상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친화력 좋은 여우들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p060~061

보통 여우는 둘 중 하나를 갖고 놀았지만 내가 가리킨 장난감을 고르지는 않았다. 녀석들은 아무 장난감이나 선택했다. 친화력 좋은 여우들은 내가 제안한 장난감을 선호했다. 보통 여우와 친화력 좋은 여우가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은 동일했지만, 친화력 좋은 여우만 내 손짓에 응했다. -p074

침팬지와 보노보는 거의 모든 인지력 테스트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였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마음 이론 관련 능력을 평가하는 놀이였는데, 이 테스트에서는 보노보가 침팬지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다. 보노보는 특히나 사람이 시선 옮기는 방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p104

선사시대 우리 인간의 뇌의 크기로 판단하건대, 유사한 인간종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 없었는데 우리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가축화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사회연결망을 급속하게 확장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우리나 호모 속 다른 사람 종의 식단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 50만 년 동안 살았던 모든 사람 종이 불을 다루고 조리한 음식을 먹고 장거리를 달리고 도구를 사용해 동물을 죽이고 도살했을 것이다. 뇌 크기나 신경세포 밀도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종에게도 우리의 범주에 속하는 문화가 있었으며, 어쩌면 우리와 비견되는 언어 능력도 지녔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기술 수준이 다른 사람 종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와 나머지 사람 종 사이에 중요한 한 가지 다른 점이 남는다. 지금으로부터 5만 년보다 조금 더 전쯤에 우리 종이 사회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을 경험했다는 점 말이다. - p120

사회연결망이 확장되면 강력한 피드백 순환 고리가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우리는 더 나은 기술을 갖게 된다. 개선된 기술로 더 많은 양식을 구할 수 있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더 밀도 높은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다. 인구밀도가 높은 집단은 기술을 한 층 더 발전시킬 것이며 이런 식으로 순환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 p121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p122

여기까지는 '아하'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후로는 '가축화' 변화를 통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왜 이런 모습인지를 설명해나가는 논리에 공감하게 되었다.

비인간화는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실제로 무슬림을 비인간화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중동에서 고문과 드론 공격 둘 다 허용할 것을 주장했다. 크테일리는 사람들이 특정 그룹에게 더 위협을 느낄 때 그들에 대한 비인간화의 경향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 p190

크레일리가 이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었다. 이것을 보복성 비인간화라고 한다. -ㅔ193

나는 열네 살 때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한 병원에 들이닥쳐 인큐베이터에 있던 조산아들을 꺼내서 던졌다고 진술한 나이라의 증언을 보았다. (…)
결국 그 증언은 날조였음이 밝혀졌다. 나이라는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그 증언은 미국에서 쿠웨이트 방어를 지지하는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쿠웨이트 정부의 의뢰를 받은 광고회사 힐 앤 놀튼이 진행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래 최대 규모가 될 군사 작적에 우호적 여론을 만들어 내려면 정확히 어떤 단추를 눌러야 하는지 힐 앤 놀튼은 알았던 것이다. -p194~195

우리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서 증오와 적대가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외면할 경우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많이 받는다. 왜 다른 것일까? 가끔 나도 이질적인 사람이나 조직에 대해서 그런 감정이 든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세 가지 중심 요인이 도출되었는데, 바로 편견, 순응 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을 “오류가 있으나 완고한 일반화가 기반이 되는 혐오”라고 기술한다. -p212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은 사람에게 해를 가했을 때는 징벌을 가한 사람 스스로 자신을 면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징벌을 받은 사람이 고통에 덜 민감하기 때문에 전기충격을 더 강화해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밴듀라는  비인간화가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주는 중심 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p217

(필립) 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원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p218

한 백인 표본 그룹 사람들은 “사형을 당한 사람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더 적극적으로 사형을 지지하기도 했다. 변호사 사비 고슈레이는 “피고인이 죽느냐 사느냐는, 배심원들의 눈에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고 말한 바 있다. -p224

그렇다고 우리가 다정한 사람들로 유전학적 조작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정한 여우 만들기 실험도 결국 1%의 친화적 여우만을 지속적 교배를 통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신장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신체 형질조차도 관련 유전자 집합을 토대로 사람을 선택적으로 번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신장은 대체로 150센티미터에서 180센티미터 사이에 분포하는데, 신장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거의 700개에 달하고 이 유전자 중에서도 최종 신장의 유전 분산에 작용하는 것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환경 인자와 다른 인자가 담당한다.)
행동 형질은 훨씬 더 복잡하다. 모든 행동에는 수천 개의 관련 유전자가 상호작용한다. 행동 변이가 일어날 때 유전자 하나의 역할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타인에 대한 관용 혹은 불관용의 성향은 유전학적 영향보다는 사회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 혹은 종교를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도록 타고난 사람은 없다”라고 넬슨 만델라는 썼다. “혐오는 학습되는 것임이 분명하며, 학습을 통해서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도록 배울 수도 있다. 사랑이 그 반대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p250

그 사례 중의 하나는 2차 세계 대전시에 유태인을 구출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는 바로 접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반대쪽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영향을 잘 받는다고 한다.

사회학자 새뮤얼 올린는 아내 펄과 함께 이 시기에 유대인을 구출한 사람 수백 명의 증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찾아낸 공통된 특징은 단 하나였다. 그들 모두가 전쟁 전에 유대인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류와 친하게 지낸 경험이 있었다. -p258

무엇보다도, 가장 배타적인 사람들이 접촉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은 사회 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동성애자, 흑인 재소자, 이민자, 노숙자,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해 차별받는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크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p263

이런 성향을 추측하는 방법 중에 동물에 대한 태도로도 판단 가능하다고 한다. 

조사 결과, “사람을 동물과 다르다고 여기는 태도나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가 이민자나 흑인이나 소수 민족 등 사람 외집단을 동물로 비유하는 비인간화에 주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293

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타인 즉, 다른 집단과 다른 인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도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에 대해 사회 지배 성향이 높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 -p299

이 책에서는 우리의 건축도 서로 접촉하고 왕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고,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저 평화를 유지하면서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평화시위 포함) 

우리의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을 이겨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끼리의 폭력이 줄어들고,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증거로 다시 한번 인간 스스로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